이태원·홍대 인파 몰려도 안전불감증...외국 축제 왜 이렇게까지

<이미지 : 이해를 돕기 위한 AI생성>
■ 핵심 포인트
- 2022년 이태원 참사 159명 사망 후에도 할로윈 축제 지속
- 2025년 '케이팝 데몬 헌터스' 돌풍에 젊은층 안전불감증 심화
- 홍대·이태원 매년 수만 명 몰려도 실효성 없는 안전대책
- "외국 축제 왜 이렇게까지" 비판 목소리 커져
- 전문가들 "축제 주최자 없는 행사, 구조적 한계"
- 일본 시부야는 "오지 말라" 경고...한국과 대조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에서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가 발생한 지 3년. 하지만 올해도 이태원과 홍대 일대에는 할로윈을 즐기려는 젊은이들이 몰리면서 안전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세계적 돌풍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을 폭발시키면서, 오히려 안전불감증이 심화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케데헌 열풍에 들뜬 거리..."참사는 잊혔다"
지난 6월 공개된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넷플릭스 역사상 최고 인기 애니메이션으로 등극하며 전 세계적으로 한국 문화 열풍을 일으켰다. 41개국 넷플릭스 1위를 차지했고, OST는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에 진입하는 등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문제는 이 열풍이 할로윈 시즌과 맞물리면서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 속 할로윈 콘셉트의 악령 사냥 장면들이 젊은층에게 "할로윈=힙한 문화"라는 인식을 더욱 강화시켰고, 9월 말 국내에 오픈한 '케데헌 테마존'은 연일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서울 마포구의 한 대학생 김모(22)씨는 "케데헌 보고 나서 할로윈 분장하고 홍대 가고 싶어졌다"며 "이태원 사고는 알고 있지만 그건 3년 전 일이고, 지금은 안전대책도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참사의 기억은 희미해지고,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이 안전 의식을 압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매년 안전대책" 반복되지만...실효성은 의문
행정안전부는 올해도 할로윈 기간(10월 25일~11월 1일) 특별대책기간을 운영하며 이태원, 홍대, 명동 등 27개 지역을 집중 관리한다고 밝혔다. 인파 밀집도가 높은 12개 지역에는 현장 상황관리관을 파견하고, 인파감지형 CCTV를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이태원 상인 이모(45)씨는 "매년 참사 전에도 대책 세운다고 했는데 결국 159명이 죽었다"며 "경찰 몇 명 더 배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2022년 참사 당시에도 용산경찰서는 사전 대책회의를 열고 기동대 200명 지원 계획을 세웠지만, 상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137명만 배치됐다. 사고 4시간 전부터 압사 관련 신고가 11건이나 들어왔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2023년 이태원 참사 1주기 때는 홍대로 인파가 쏠리면서 예상 7만 명의 2배에 가까운 9만 4천 명이 몰렸다. 마포구청이 "할로윈 데이 축제는 금지합니다"라는 현수막을 걸고 캠페인을 벌였지만, 실제 통제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젊은이들의 안전불감증..."설마 또 그런 일이?"
더 큰 문제는 젊은층의 안전불감증이다. 참사 현장 목격자들은 당시 "경찰과 의료진이 길을 터달라고 했지만, 사람들이 할로윈 의상이라고 생각해 비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구급차 사이렌이 울려도 '떼창'을 이어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박모 교수는 "대형 참사 이후 2~3년이 지나면 '정상화 편향'이 나타난다"며 "특히 젊은층은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낙관적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태원 사고는 운이 없었던 거 아니냐", "매년 홍대에 그렇게 많이 가는데 사고 안 나지 않나"는 식의 댓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참사의 교훈이 희석되고 있는 것이다.
"외국 축제에 왜 이렇게까지"...비판 여론도 확산
한편에서는 "미국의 할로윈 문화를 왜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할로윈은 1990년대 말 국내에 들어온 외래 문화로, 중장년층은 대부분 모르거나 적대적이다.
문화평론가 최모씨는 "크리스마스는 1884년부터 130년 넘게 한국 사회에 뿌리내린 반면, 할로윈은 20~30년 된 축제"라며 "특히 주최자도 없고 통제도 안 되는 거리 축제가 대형 참사까지 낳았는데, 과연 이를 계속 방치해야 하는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젊은이들의 축제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지만, "159명의 목숨과 맞바꿀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반박에 부딪히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할로윈_이제그만" 해시태그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구조적 한계..."주최자 없는 축제"가 문제
전문가들은 할로윈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한다. 지자체나 민간단체가 주최하는 공식 축제와 달리, 할로윈은 100% 민간 자발적 행사라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022년 참사 2주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이태원 지구촌축제'는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가 주최하고 서울시와 용산구가 후원해 30만명이 다녀갔지만 사고가 없었다. 메인 도로를 통제하고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로윈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에서 어느 만큼 행사가 치러지는지"조차 명확하지 않다. 행정안전부의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은 "축제 주최가 있는 경우"에만 적용돼, 할로윈은 사각지대에 놓인다.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김모 교수는 "주최자 없는 대규모 인파 집결을 규제할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며 "일본처럼 특정 지역 진입 자체를 제한하거나, 아예 할로윈을 공식 축제로 전환해 통제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 시부야 "오지 마세요"...한국과 극명한 대조
이태원 참사를 지켜본 일본 도쿄 시부야구는 2023년부터 강경 대응에 나섰다. "할로윈이 목적이라면 시부야에 오지 않길 바란다"는 경고를 9월부터 시작했고, '시부야는 할로윈 이벤트 장소가 아니다'라는 대형 구조물을 설치했다.
시부야구는 할로윈 당일 편의점 등 상점에 주류 판매 금지까지 요청했다. 또한 수백 명의 경찰과 'DJ폴리스'(이동식 DJ 차량에서 경찰이 유머러스하게 군중을 통제하는 일본식 방식)를 동원해 압사를 원천 차단했다.
일본은 2001년 효고현 아카시 불꽃축제에서 11명이 압사한 후 '효고현 혼잡경비 매뉴얼'을 만들어 철저히 지키고 있다. 한국도 이를 참조해 '2021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주최자가 없다"는 이유로 이태원에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 전문가 제언: "이제는 선택의 시간"
1. 할로윈 공식 축제화: 주최자를 정하고 입장료를 받아 인원을 통제하는 공식 축제로 전환
2. 거리 축제 전면 금지: 일본 시부야처럼 특정 지역 진입 자체를 제한하고 주류 판매 금지
3. 법적 근거 마련: '주최자 없는 대규모 집회'를 규제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
4. 안전교육 강화: 학교와 직장에서 군중 압사 대응 교육 의무화
올해 할로윈을 앞두고 이태원 참사에 대한 문화평론가 중에는 이러한 의견도 있었다. "케데헌의 성공을 축하한다. 하지만 그 열풍이 또 다른 참사로 이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159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케이팝의 세계적 인기는 자랑스럽다. 하지만 그 인기가 안전불감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할로윈 축제를 계속할 것인지, 금지할 것인지, 아니면 안전하게 관리할 방법을 찾을 것인지. 이제는 선택의 시간이다.
깨알소식 박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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