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세대 연극 스타' 윤석화, 뇌종양 투병 끝 영면
대학로 '정미소'서 마지막 인사…용인공원 안장
202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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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핵심 요약
- 별세 - 12월 19일 오전 9시 5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향년 69세로 타계
- 사인 - 악성 뇌종양, 2022년 10월 진단 후 약 3년간 투병
- 영결식 - 21일 오전 8시,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교회 예배 형식으로 거행
- 노제 - 21일 오전 9시 30분, 대학로 한예극장(옛 정미소) 마당에서 진행
- 장지 - 용인공원 아너스톤 (故 강수연 배우 안장지)
- 유족 - 남편 김석기 전 중앙종금 대표, 아들 김수민, 딸 김수화
3년 투병 끝에 눈 감다…향년 69세
한국 연극계의 '1세대 스타' 배우 윤석화가 19일 오전 9시 50분경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향년 69세.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은 지 약 3년 만이다.
고인은 2022년 7월 연극 '햄릿' 무대에 오른 뒤 같은 해 10월 영국 출장 중 쓰러졌다. 이후 악성 뇌종양 판정을 받고 서울에서 세 차례 큰 수술을 받았다. 그는 "하루를 살아도 나답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며 항암 치료 대신 자연 요법 치료를 선택했다. 2023년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선배 손숙의 연기 인생 60주년 기념 연극 '토카타'에 약 5분간 우정 출연한 것이 마지막 무대가 됐다.
해외에 거주하던 자녀들은 고인의 병세가 악화됐다는 소식을 듣고 최근 귀국해 마지막을 함께했다. 한편 한국연극배우협회가 19일 오전 5시경 보도자료를 통해 고인이 전날 밤 별세했다고 발표했다가 오보로 정정하는 해프닝이 있었으나, 불과 몇 시간 뒤 실제 별세 소식이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대학로서 마지막 인사…'정미소'에서 노제
고인의 영결식은 21일 오전 8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교회 예배 형식으로 엄수됐다. 유족과 동료 예술인 70여 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조사를 맡은 박상원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은 "누구보다 불꽃 같은 삶을 살았던 선배였다"며 "하늘나라에서 마음껏 뛰어노시길 바란다"고 추모했다.
영결식을 마친 뒤 유족과 동료들은 고인이 생전 운영했던 대학로 한예극장(옛 설치극장 '정미소') 마당으로 이동해 노제를 진행했다. 노제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주관했으며, 고인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이사장으로 재직했던 인연을 기리는 의미도 담았다.
"윤석화 선생님은 '연극이란 대답할 수 없는 대답을 던지는 예술'이라고 말하며 늘 관객에게 질문을 건넸다. 무대에 대한 열정으로 누구보다 뜨거운 연기 인생을 살았던 한 명의 배우이자 한 시대의 공연계를 이끈 예술가를 오늘 떠나보낸다."
- 길해연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 추도사 중
추도사 이후에는 고인이 2003년 제작한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에 출연했던 최정원, 배해선, 박건형 등 후배 배우들이 고인의 애창곡 '꽃밭에서'를 합창하며 마지막을 배웅했다. 고인의 남편과 딸도 눈물을 흘리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좋은 날엔"이라는 후렴구가 현장에 울려 퍼지자, 마지막 길을 지켜보던 시민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과 함께 연극 '신의 아그네스'에 출연했던 박정자와 손숙은 손을 맞잡은 채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반세기 동안 연극을 향한 열정을 불태웠던 대학로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고인의 유해는 용인공원 아너스톤으로 옮겨져 영면에 들었다. 이곳은 2022년 별세한 故 강수연 배우가 안장된 곳이기도 하다.
| 故 윤석화 장례 일정 |
| 별세 |
12월 19일 오전 9시 50분 |
| 빈소 |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
| 입관 |
12월 20일 오전 8시 |
| 영결식·발인 |
12월 21일 오전 8시 (교회 예배 형식) |
| 노제 |
12월 21일 오전 9시 30분, 대학로 한예극장 마당 |
| 장지 |
용인공원 아너스톤 |
'신의 아그네스'로 연극계 최초의 스타 탄생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했다. 광고 삽입곡을 노래하는 일을 하던 중 광고회사 인근 민중극단 사무실을 드나들다 연극과 인연을 맺었다. 등장과 동시에 연극계 스타로 떠오른 그는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커피 광고 카피를 유행시킬 만큼, 연극 배우로서는 이례적인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윤석화의 이름을 연극사에 각인시킨 작품은 1983년 초연한 '신의 아그네스'였다. 미국 뉴욕대 유학 중 브로드웨이에서 이 작품을 본 그는 대본을 직접 번역해 주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초연 당시 10개월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우며 소극장 연극도 장기 흥행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윤석화 장르'라는 말이 나올 만큼 공연 기획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이후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스터 클래스' 등에서 활약하며 손숙, 박정자와 함께 1980~1990년대 연극계를 대표하는 여배우 트로이카로 자리매김했다. 1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90분간 1인 다역을 소화하며 여성 1인극의 신화를 썼고, 40대에 출연한 '덕혜옹주'에서는 13세부터 60세까지를 연기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2016년에는 예순의 나이에 연극 '햄릿'에서 오필리아 역을 맡아 화제를 모았다.
| 故 윤석화 프로필 |
| 출생 |
1956년 서울 |
| 데뷔 |
1975년 연극 '꿀맛' |
| 대표작 (연극) |
신의 아그네스, 햄릿, 딸에게 보내는 편지, 마스터 클래스 |
| 대표작 (뮤지컬) |
아가씨와 건달들(1994), 명성황후(1995) |
| 대표작 (드라마) |
우리가 만난 기적(2018) |
| 주요 수상 |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 4회, 동아연극상, 이해랑연극상 |
| 훈장 |
2005년 대통령표창, 2009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 |
배우 넘어 제작자·발행인…공연 생태계 고민한 예술인
윤석화는 배우에 머물지 않고 무대 안팎에서 공연 생태계를 고민한 예술인이었다. 1995년 종합엔터테인먼트사 '돌꽃컴퍼니'를 설립해 만화영화 '홍길동 95'를 제작했고, 1999년에는 경영난에 빠졌던 공연예술 전문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을 맡았다.
2002년에는 건축가 장윤규와 함께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 '정미소'를 개관했다. 흥행과 거리가 먼 실험적 작품들이 이 공간에서 관객을 만났고, 젊은 창작자들이 무대를 실험할 수 있었다. '19 그리고 80', '위트' 등의 연극을 공연하며 신선한 작품을 관객에 소개했다. 정미소는 2019년 만성적인 경영난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윤석화가 연극을 위해 남긴 가장 물리적인 유산이었다.
'객석' 운영 적자를 메우기 위해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 제작·연출에도 나섰다. 그가 제작에 참여한 영국 웨스트엔드 뮤지컬 '톱 해트'는 '영국의 토니상'으로 불리는 로런스 올리비에상을 수상했다.
입양 자녀 둔 어머니…사회 공헌 활동도 활발
아들과 딸을 입양한 윤석화는 입양 문화 개선을 위한 자선 공연을 이어가며 예술인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다. 입양기관 지원과 미혼모 자립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꾸준히 열었으며, 2017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을 역임하며 연극인의 복지 향상에도 힘썼다.
"아마 천국에 가서도 나는 배우를 하고 있을 거예요. 일흔 살이 넘으면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동네 꼬마 세 명이 관객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언제 어디서든 설 수 있는 무대, 나눌 수 있는 무대만 있으면 서겠다."
- 故 윤석화, 생전 인터뷰 중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인을 "연극계의 큰 기둥"이라 칭했고, 선후배 예술인들은 "무대 위에서 가장 뜨거웠던 사람", "공연예술계의 큰 발자취를 남기신 큰 별"이라며 애도했다. 한국 연극의 한 시대를 이끈 배우 윤석화는 떠났지만, 무대를 사랑하는 법을 몸으로 보여준 그의 이름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박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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