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5대 은행 희망퇴직 대상 '만 40세'까지 확대...2026년 퇴직자 2,326명 (전년 대비 17% 증가)
- 대기업 직장인 체감 정년 '평균 49.5세'...법정 정년 60세와 10년 이상 괴리
- 상장사 평균 근속연수 11.4년...27세 입사 시 38세에 퇴직하는 셈
- 삼성그룹 부장급 정년퇴직자 0.5% 미만...임원 못 되면 '알아서 나가야'
- 자영업 탈출구도 막혀...숙박·음식점업 5년 생존율 22.8%, 카페 폐업률 14.1%
- 50대 자영업자 절반이 월 최저임금도 못 번다
역대급 실적인데...40대도 "나가주세요"
40대 초반, 은행에서 10년 넘게 근무해온 A씨는 최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회사가 희망퇴직을 권유한 것이다. 그동안 조기 퇴직은 50대 중후반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40대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이 40대 희망퇴직을 본격 확대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4급 이하 직원 중 '1985년생(만 40세) 이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NH농협은행도 근속 10년 이상, 만 40~56세 전 직급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하나은행, 우리은행도 40대 퇴직 행렬에 동참했다.
2025년 5대 은행 희망퇴직 현황
| 은행 |
퇴직자 수 |
특별퇴직금 (1인 평균) |
대상 연령 |
| 신한은행 |
669명 |
3억1,286만원 |
만 40세~ |
| KB국민은행 |
647명 |
3억7,000만원 |
1975년생~ |
| NH농협은행 |
446명 |
3억2,240만원 |
만 40세~ |
| 우리은행 |
429명 |
3억4,918만원 |
1980년생~ |
| 하나은행 |
263명 |
3억7,011만원 |
만 40세~ |
| 합계 |
2,326명 |
전년 대비 17.1% 증가 |
충격적인 것은 이들 은행이 모두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5년 3분기 기준 주요 은행들의 누적 순이익은 21조원을 돌파했다. 전년 동기 대비 2조3000억원 이상 늘어난 수치다. 돈을 잘 벌고 있는데도 사람부터 줄이는 것이다.
왜 잘나가는데도 내보내나
기업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잘나가기 위해서' 내보내는 것이다. 디지털 전환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된다.
디지털 전환이 바꾼 은행 풍경
지난 10년간 국내 은행의 영업점 수는 절반 가까이 줄었다. AI 챗봇과 음성봇, 자동화된 대출 심사 시스템이 일상화되면서 지점 중심의 전통 업무가 줄어들고 있다. 비대면 거래 확대로 필수 인력이 크게 줄었고, 조직 구조도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뀌고 있다. 연봉이 높은 40대 중간관리자들이 '구조조정 1순위'로 떠올랐다.
은행권의 인력구조도 문제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은행 직원 중 20대는 11.2%에 불과한 반면, 50대 이상은 22.7%에 달한다. 직원 평균 연령도 42~43세 수준이다. 중간관리자가 많은 '항아리형' 구조가 일반화되면서 조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지속돼 왔다.
"은행에서 한번에 많은 신규 인력이 필요치 않은 데도 정부의 채용 확대 요구에 규모를 늘리면서 조직이 비대해진 측면이 있다. 중간관리자가 많은 비효율적 인력구조를 정비하기 위해서도 희망퇴직은 필요한 상황이다."
— 시중은행 관계자
40세 상무, 42세 상무가 탄생하는 대기업에서 4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 직장인들의 조기 퇴직 압박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CJ그룹에서 40세 상무가, 삼성디스플레이에서 42세 상무가 탄생하면서 "임원 못 달면 눈치껏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이 강해졌다.
법정 정년 60세, 체감 정년 49.5세
법으로는 60세까지 일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충격적인 체감 정년 통계
잡코리아·알바몬 조사 결과, 대기업 직장인이 체감하는 정년퇴직 시기는 평균 49.5세다. 법정 정년 60세보다 10년 이상 이른 수준이다. 중견기업·중소기업은 51.7세, 공기업은 53.8세로 조사됐다.
기업 규모별 체감 정년
| 기업 유형 |
체감 정년 |
법정 정년과 차이 |
| 대기업 |
49.5세 |
-10.5년 |
| 중견기업 |
51.7세 |
-8.3년 |
| 중소기업 |
51.7세 |
-8.3년 |
| 공기업·공공기관 |
53.8세 |
-6.2년 |
상장사 업계 평균 근속연수는 2021년 기준 11.4년에 불과하다. 27세에 입사할 경우 평균 38세에 퇴직한다는 이야기다. 삼성그룹의 경우 부장급으로 정년퇴직하는 인원이 100~300명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전체의 0.5% 이내만이 정년퇴직할 수 있다는 뜻이다.
KB금융지주 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50대의 실제 은퇴 나이는 49세, 60대는 57세, 70대는 63세로 연령대별 희망 은퇴 나이보다 10년 이상 일렀다. 한국인은 49세에 은퇴하고 72세까지 일해서 먹고살아야 하는 나라가 됐다. 공백기가 무려 23년이다.
그렇다고 치킨집·카페 차릴 수도 없는 현실
퇴직 후 선택지는 제한적이다. 재취업? 40대 이상에게 양질의 일자리는 극히 드물다. 자영업? 치킨집이나 카페는 이미 '레드오션'을 넘어 '블랙오션'이다.
자영업 생존율의 냉혹한 현실
| 업종 |
폐업률 |
5년 생존율 |
| 커피전문점(카페) |
14.1% |
- |
| 치킨전문점 |
10.8% |
- |
| 음식업종 전체 |
18.1% |
- |
| 숙박·음식점업 |
- |
22.8% |
* 출처: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통계청 '2021 기업생멸행정 통계'
2023년 한 해 동안 91만명의 자영업자가 사업을 접었다. 역대 최고 폐업 수치다. 자영업자 폐업 지원금은 1조1,820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돌파했다. 특히 퇴직 후 자영업에 뛰어든 50대 자영업자의 절반이 월 최저임금도 벌지 못하고 있다.
"자영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하다가 잘 안 되면 그만두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퇴출하는 데도 비용이 들어간다. 임대료는 계속 내야 하고, 대출 문제도 있다. 영업이 잘 안 된다고 해도 손해를 보면서 계속 장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 옥우석 경제학자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영업자 비중이 7번째로 높다. 자영업자 비율이 23.5%로 4명 중 한 명꼴이다. 일본(10%)이나 미국보다 훨씬 높다. 문제는 한국보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나라들이 대부분 관광이 발달했거나 소득이 낮은 국가라는 점이다.
왜 자영업에 뛰어드나
답은 간단하다.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50대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
평균 소득을 보면 50대 정규직 근로자의 임금이 가장 높다. 자영업 평균 소득은 중간쯤, 일용직·임시직 근로자 임금이 가장 아래에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본의 아니게 회사를 그만둬야 했을 때 새로운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고령 노동 시장이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할 수 있도록 형성돼 있지 않다. 내가 갖고 있던 전문성을 살려서 조금 임금이 깎이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아주 임금이 낮은 비정규직 시장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차라리 사업체를 열어볼까' 하는 판단을 하게 된다.
한국은행이 202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60세 이상 자영업자는 2015년 142만명에서 2024년 210만명으로 급증했으며, 2032년에는 248만명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가 지난해부터 법정 은퇴 연령에 진입하면서 자영업 시장으로의 유입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문제는 이들 대다수가 '돈 안 되는' 업종에 몰린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60세 이상 고령 자영업자 증가분 47만명 중 61.7%(29만명)가 운수창고업, 숙박음식, 도소매, 건설업을 선택했다. 모두 전문적인 기술과 지식이 필요 없는,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이다.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은 극한 경쟁에 놓여있다는 의미다.
40대 직장인의 딜레마
40대는 조직에서 경험과 숙련이 가장 두텁게 쌓이는 시기다. 동시에 자녀 교육비, 주거비 등 지출이 가장 많은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점에 퇴직을 요구받는다는 것은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큰 손실이다.
40~50대의 노후 준비 현황
| 항목 |
비율 |
| 노후 준비 필요성 인식 |
90.5% |
| 실제 노후 준비가 돼 있다 |
37.3% |
| 노후 준비 안 된 비율 |
62.7% |
* 출처: 보험개발원 '2025 KIDI 은퇴시장 리포트'
서울에 거주하는 52세 1인 가구 오 모 씨는 2024년 희망퇴직 후 재취업을 못하고 있다. 그는 "원래 계획은 60세까지 일하면서 연금과 저축을 마무리하는 거였다. 그런데 50대 초반에 회사를 나가게 되면서 모든 계획이 멈췄다"며 "재취업이란 게 말이 쉽지, 현실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토로했다.
국민연금 수령은 65세부터 시작된다. 조기 수령(60세부터)을 신청할 수 있지만 감액 수령된다. 49세에 퇴직하고 65세에 연금을 받기까지 16년. 이 기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까.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정년 연장 논의
당정이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나이가 2033년부터 65세로 늦춰지는 것에 맞춘 대책이다. 다만 청년층의 취업난 심화 우려로 세대 간 갈등도 예상된다.
퇴직 후 재고용 제도
한국은행은 고령층이 정년 이후에도 상용직으로 계속 근무할 수 있도록 '퇴직 후 재고용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자영업보다 소득은 다소 낮을 수 있지만, 일정한 수입이 보장되는 상용근로가 경제적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더 안정적이라는 분석이다.
고령자 재취업 지원 확대
조기 퇴직자들이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임금근로 일자리 부족 등으로 생계형 창업을 하지 않도록 고령자의 재취업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금체계 개편
연공서열형 임금 체계에서는 근속이 길수록 인건비 부담이 커진다. 직무·성과 중심 임금체계로의 전환이 장기 고용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있다.
"고령층 자영업자의 증가는 단순한 은퇴 후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정년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상용근로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시급한 정책과제다."
— 최승훈 한국생애설계포럼 소장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의 안정적인 삶은 끝났다
한때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은 한국 중산층의 상징이었다. 안정적인 직장, 적당한 자산, 노후 걱정 없는 삶. 하지만 그 신화는 이미 무너졌다.
40대에 회사를 나와야 하고, 재취업은 어렵고, 자영업은 실패 확률이 높다. 국민연금은 65세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 사이 16년의 공백을 스스로 메워야 한다. 이것이 2026년 대한민국 40대 직장인의 현실이다.
희망퇴직 한파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디지털 전환은 가속화되고, AI가 더 많은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다. 아마존은 2030년까지 사업 운영의 75%를 자동화하고 최대 60만 개의 일자리를 로봇으로 대체하는 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명확하다. 법정 정년과 실제 퇴직 연령의 괴리, 고령 노동시장의 부재, 자영업 시장의 과포화. 이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40대 조기퇴직'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사회 전체의 위기로 확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