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요약
- 10월 기준 장기실업자 11만9000명으로 4년 만에 최다 기록
- 전체 실업자 중 장기실업자 비율 18.1%, 통계작성 이후 최고치
- 4년제 대졸 이상 2030 장기실업자 3만5000명, 13개월래 최다
- 청년 인구 감소 속에서도 고학력 장기백수는 역설적으로 증가
- 대기업-경력직 선호와 청년-신입 기대 간 미스매치가 구조적 원인
4년제 대학 졸업 이상 고학력 청년층이 6개월 넘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장기 백수 상태가 13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전체 장기실업자 수도 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며 청년 고용시장의 구조적 문제가 심화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6개월 이상 구직 활동을 했음에도 취업하지 못한 장기실업자는 11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10월(12만8000명) 이후 약 4년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전체 실업자(65만8000명) 중 장기실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10월 기준 장기실업자 비율은 18.1%로, 1999년 통계 작성 시작 이래 같은 달 기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외환위기 여파가 지속되던 1999년 10월(17.7%)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6개월 만에 두 배로 급증한 장기실업
장기실업자 비율의 급증 속도도 이례적이다. 올해 4월만 해도 9.3%로 한 자릿수였던 장기실업자 비율은 5월 11.4%로 두 자릿수에 진입한 후 불과 6개월 만에 18.1%로 거의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 5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장기실업자는 지속적으로 10만명을 웃돌았다. 이후 대체로 10만명 아래로 내려갔다가 지난 10월 다시 급증한 것이다.
| 구분 |
장기실업자 수 |
전체 실업자 대비 비율 |
특징 |
| 2024년 10월 |
11만9000명 |
18.1% |
통계작성 이후 최고 |
| 2021년 10월 |
12만8000명 |
- |
코로나19 여파 |
| 1999년 10월 |
- |
17.7% |
외환위기 여파 |
| 2024년 4월 |
- |
9.3% |
연중 최저치 |
25~29세 고학력 장기백수가 가장 많아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4년제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을 지닌 20~30대 중 장기실업자는 3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9월(3만6000명)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많은 수치다.
연령대별로 살펴보면 25~29세에서 장기실업 규모가 가장 컸다.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후 장기간 구직 상태에 있는 이들이 1만9000명으로, 지난 3월(2만명) 이후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청년 인구가 빠르게 감소하는 추세 속에서도 고학력 장기백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층(15~29세) 인구는 지난 3월 801만6000명에서 4월 799만4000명으로 800만명대가 무너진 이후, 매달 전년 대비 20만명 내외로 감소하고 있다.
청년 인구는 줄고, 장기백수는 늘고
인구 감소기에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청년층은 매달 20만명씩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고학력 청년 장기실업자는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일자리 부족이 아닌 구조적 미스매치 문제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쉬었음' 청년은 감소, 구조적 미스매치 지속
한편 구직 활동 자체를 포기한 '쉬었음' 청년층은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10월 '쉬었음' 청년은 40만9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9000명 줄어들며 6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장기실업자가 구직을 포기할 경우 곧바로 '쉬었음'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다시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고학력 청년 장기실업자의 증가는 이른바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이 해소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학력 청년층은 대기업이나 공기업 등 양질의 일자리를 선호하지만, 기업들은 신입보다 경력직 채용을 늘리는 추세다.
| 연령대 |
장기실업자 수 |
비고 |
| 25~29세 |
1만9000명 |
가장 많은 규모 |
20~30대 전체 (4년제 대졸 이상) |
3만5000명 |
13개월래 최다 |
| '쉬었음' 청년 |
40만9000명 |
전년비 9000명 감소 |
대기업 일자리 부족과 중소기업 기피의 악순환
일자리 미스매치의 핵심에는 대기업 일자리 부족 문제가 있다. 2023년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취업을 원하는 기업 중 대기업은 64%, 공공부문은 44%를 차지한 반면 중소기업은 16%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대기업 일자리 비중은 14%로 미국 58%, 프랑스 47%, 영국 46%, 독일·일본 41%보다 훨씬 낮아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로환경도 청년들의 기피 현상을 부추긴다. 30인 미만 사업체의 경우 출산전후휴가나 육아휴직을 일부 또는 전부 사용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각각 30%, 50%에 달한다.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직장에 다닌 지 1년이 넘지 않은 장기실업자 중 이전 직장을 그만둔 사유가 '시간·보수 등의 작업여건 불만족'인 비율이 24.7%로 두 번째로 높았다.
AI와 자동화가 가속화할 청년 실업
전문가들은 향후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제조업에서는 자동화, 스마트 팩토리, AI 도입 등으로 생산성은 올라가지만 고용은 감소하는 추세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중화학 공업 기반 제조업은 20세기 후반 경제 성장의 주역이었지만, 고용 창출 측면에서는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중국, 베트남 등 후발 국가와의 경쟁 심화로 저임금 일자리는 해외로 이전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제조업에서 서비스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하며 고용을 유지해왔지만, 한국의 경우 서비스업 자체의 생산성과 부가가치가 낮아 대졸 청년이 선호할 만한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다.
구조적 해결책 필요하다는 목소리
전문가들은 단기적 일자리 창출 정책을 넘어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에 따르면, 청년층 실업률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은 노동공급 측면보다 노동수요 측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일자리 제안 확률에 대한 취업탄력성은 높게 나타난 반면, 미취업에 따른 암묵적 기회비용에 대한 취업탄력성은 낮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해소, 중소기업 근로환경 개선, 직업훈련 및 직장체험 프로그램 확대 등 복합적 처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또한 부실한 진로교육 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현행 진로교육은 일부 인기 직종에만 편중되어 있어, 사회 전체의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 제언 요약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규제 혁파, 대기업-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해소,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직무능력 중심 채용 확대, 다양한 직업군에 대한 정확한 진로교육 등 복합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청년 인구가 감소하는 가운데서도 고학력 장기백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경기 순환적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임을 시사한다. 1999년 외환위기 수준을 넘어선 장기실업자 비율은 청년 고용시장이 위기 상황에 직면했음을 보여준다.
AI와 자동화 기술 발전, 대미 투자에 따른 고용 위축 등 향후 청년 고용 환경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정부와 기업, 교육계가 함께 나서 구조적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깨알소식 박예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