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지 : 기사 이해차 AI 생성>
'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한국은행이 숫자로 증명한 '가난의 대물림'
BOK 이슈노트 제2026-6호 '지역간 인구이동과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 분석...비수도권 고향에 남은 청년 10명 중 8명, 부모 세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해2026.02.17
|
핵심 포인트
-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 지표(RRS), 70년대생 0.11에서 80년대생 0.32로 3배 급등 - 자산 대물림(0.38)이 소득 대물림(0.25)보다 훨씬 강력...부동산이 계층 고착화 주범 - 비수도권 고향 잔류 청년, 가난 대물림 비율 58.9%(과거) → 80.9%(최근)로 급등 - 부모 자산 하위 25% 자녀, 수도권 이주 확률이 상위 25%보다 43%p 낮아 |
한국은행 조사국 지역경제조사팀 정민수 팀장과 이다혜 연구원, OECD의 Volker Ziemann은 2월 11일 BOK 이슈노트 제2026-6호 '지역간 인구이동과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 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노동패널(KLIPS) 미시자료를 분석한 이 연구는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에게 얼마나 대물림되는지, 그리고 거주 지역이 이 대물림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RRS 0.25...숫자가 말하는 '끊어진 사다리'
보고서의 핵심 지표는 '소득 백분위 기울기(RRS, Rank-Rank Slope)'다. 이 수치는 부모의 소득 순위가 올라갈 때 자녀의 소득 순위가 얼마나 따라 올라가는지를 나타낸다. 0이면 부모 소득과 자녀 소득이 완전히 무관하다는 뜻이고, 1이면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녀에게 그대로 전해진다는 의미다. 한국의 소득 RRS는 0.25로 추정됐다. 부모의 소득 순위가 100명 중 10위 오르면, 자녀의 순위는 2.5위 따라 오른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산을 기준으로 한 RRS는 0.38로, 소득보다 훨씬 높았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자산의 세대간 전이가 소득보다 훨씬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 지표(RRS) 변화 | ||
| 구분 | 소득 RRS | 자산 RRS |
| 전체 평균 | 0.25 | 0.38 |
| 1970년대생 자녀 | 0.11 | 0.28 |
| 1980년대생 자녀 | 0.32 (약 3배 상승) | 0.42 (1.5배 상승) |
| 이주 자녀 | 0.13 | 0.26 |
| 비이주 자녀 | 0.33 | 0.46 |
세대별 변화 양상은 더욱 충격적이다. 1970년대에 태어난 자녀 세대의 소득 RRS는 0.11에 불과했다. 부모가 가난해도 자녀가 얼마든지 계층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1980년대생에서 이 수치는 0.32로 약 3배 뛰었다. 자산 RRS 역시 0.28에서 0.42로 상승했다. 불과 10~20년 사이에 한국 사회의 계층 이동 사다리가 급속히 좁아진 것이다.
"떠나면 올라가고, 남으면 내려간다"
보고서가 밝힌 가장 핵심적인 메커니즘은 '이주 효과'다. 부모의 거주지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자녀의 평균 소득 백분위는 부모 세대보다 6.5%포인트 상승했다. 반면 고향에 남은 비이주 자녀는 오히려 2.6%포인트 하락했다. 떠나면 올라가고, 남으면 내려간다. 이주한 자녀 집단의 소득 RRS(0.13)와 자산 RRS(0.26)는 비이주 집단(0.33, 0.46)에 비해 현저히 낮았다. 이주 자체가 부모 세대의 경제적 영향력에서 벗어나는 통로가 된다는 의미다.
이주 vs 비이주 자녀 경제력 변화
|
80.9%...비수도권 '가난 대물림'의 충격적 수치
보고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숫자는 비수도권 고향 잔류 청년의 가난 대물림 비율 변화다. 비수도권에서 태어나 고향에 머문 자녀 중 부모 소득이 하위 50%인 경우, 자녀 역시 하위 50%에 머무는 비율은 1971~1985년생에서 58.9%였다. 10명 중 약 6명이 부모 세대의 소득 수준에 갇혀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1986~1990년생에서 이 비율은 80.9%로 치솟았다. 10명 중 8명. 같은 기간, 부모가 소득 하위 50%인데 자녀가 상위 25%로 올라선 비율은 12.9%에서 4.3%로 급감했다. 과거에는 100명 중 13명이 '개천의 용'이 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4명에 불과하다.| 비수도권 고향 잔류 자녀의 계층 이동 변화 | ||
| 부모 소득 하위 50% → 자녀 소득 분포 | ||
| 구분 | 과거 세대 (1971~1985년생) |
최근 세대 (1986~1990년생) |
| 여전히 하위 50% 잔류 | 58.9% | 80.9% |
| 상위 25% 진입 성공 | 12.9% | 4.3% |
거점도시의 몰락...'지방대 나와도 괜찮다'는 말도 옛말
보고서는 대물림 심화의 또 다른 원인으로 비수도권 거점도시의 경쟁력 약화를 지목했다. 과거에는 지방의 거점도시가 수도권에 준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었다. 현재 50대인 세대의 경우, 비수도권에서 태어나 거점도시로 이주한 사람의 평균 소득 백분위는 47.8%로 수도권 이주 집단(44.9%)보다 오히려 높았다. 비수도권 거점도시 대학을 졸업한 집단의 소득 백분위(61.7%)와 수도권 대학 졸업 집단(62.3%)도 사실상 대등했다. 굳이 서울에 가지 않아도 부산, 대구, 광주 같은 거점도시에서 충분히 계층 상승이 가능했던 시대였다.그러나 현재 30대에서는 판이 완전히 뒤집혔다. 수도권 이주 집단의 소득 백분위(50.9%)가 거점도시 이주 집단(48.6%)을 앞질렀고, 수도권 대학 졸업자(61.8%)와 거점도시 대학 졸업자(53.3%) 사이에는 8.5%포인트의 격차가 벌어졌다. 과거에는 0.6%포인트에 불과했던 차이가 14배 이상 확대된 것이다. 지방 거점도시가 더 이상 '대안적 성공 경로'로 기능하지 못하게 되면서, 수도권 진입이 사실상 유일한 계층 상승 통로가 된 셈이다.
| 비수도권 출생 자녀의 이주지별 평균 소득 백분위 | |||
| 거점도시 이주 | 수도권 이주 | 격차 | |
| 과거 (현 50대) | 47.8% | 44.9% | 거점도시 +2.9%p |
| 최근 (현 30대) | 48.6% | 50.9% | 수도권 +2.3%p (역전) |
| 비수도권 출생 자녀의 대학 소재지별 평균 소득 백분위 | |||
| 거점도시 대학 | 수도권 대학 | 격차 | |
| 과거 (현 50대) | 61.7% | 62.3% | 0.6%p (거의 동일) |
| 최근 (현 30대) | 53.3% | 61.8% | 8.5%p (14배 확대) |
'가난→이동 불가→가난'의 삼중 함정
보고서의 데이터를 종합하면, 한국 사회에서 '가난의 대물림'은 단순히 소득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함정의 문제다. 그 메커니즘은 세 겹의 고리로 이뤄져 있다.
가난 대물림의 삼중 구조
|
한국은행이 제시한 해법...'작은 개천을 큰 강으로'
보고서는 대물림 완화를 위해 두 방향의 정책을 제안했다. 첫째, 이동성 강화다. 저소득층 자녀가 수도권으로 이주할 수 있는 기회를 넓히는 것이다. 보고서는 비수도권 출신 학생의 수도권 대학 진학을 확대하는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했다. 둘째, 보다 근본적으로는 비수도권 거점도시의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정민수 한은 지역경제조사팀장은 "비수도권 거점대학이 소수의 분야라도 상위권 대학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출생 및 거주지역과 맞물려 경제력 대물림이 심화하는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용이 될 재목이 강으로' 가는 것을 돕는 이동성 강화와 더불어, 보다 근본적으로는 지방을 '작은 개천에서 큰 강으로 탈바꿈'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 정민수 한국은행 조사국 지역경제조사팀장 |
| 한국은행 보고서의 정책 제안 | |
| 단기: 이동성 강화 | 비수도권 출신의 수도권 대학 진학 확대를 위한 '지역별 비례선발제' 도입, 저소득층 청년 수도권 이주 지원 등 |
| 중기: 거점대학 육성 | 비수도권 거점대학의 특정 분야 경쟁력을 상위권 대학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선택과 집중' 투자 |
| 장기: 거점도시 재건 | 행정구역 통합·광역 거버넌스 개편을 통한 거점도시 위상 강화, 산업·일자리 기반 개선으로 '지역 내 서울' 구축 |
숫자 너머의 현실
이 보고서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국 사회에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데이터로 부정되고 있다. 어디서 태어났느냐, 부모가 얼마나 가졌느냐가 자녀의 경제적 미래를 결정하는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자산을 통한 대물림이 소득보다 강력하다는 점은, 부동산 중심의 자산 구조가 계층 고착화의 핵심 동인임을 시사한다.한국은행이 제시한 '작은 개천을 큰 강으로' 만드는 해법은 방향성으로는 타당하지만, 그 실현에는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수도권 집중이 자기강화적 순환 구조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거점도시 투자가 의미 있는 결과를 내려면 단기적 성과에 매몰되지 않는 장기적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결국 이 보고서가 우리 사회에 묻고 있는 질문은 하나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 사회'를 우리는 얼마나 더 방치할 것인가. 보고서가 제시한 RRS 0.32라는 숫자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고향에서 꿈을 접고 있을 수많은 청년들의 좌절을 응축한 수치다.
박예현 기자
ⓒ 2026 깨알소식. All rights reserved.
ⓒ 2026 깨알소식.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