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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 알바생에서 슈퍼볼 무대까지...배드 버니와 라틴팝 100년의 여정
스페인어 전곡 공연 최초, 그래미 올해의 앨범 최초, 시청자 1억 2,820만 명. 탱고에서 보사노바, 살사에서 레게톤까지...라틴의 리듬은 어떻게 세계의 심장박동이 되었나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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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포인트]
- 배드 버니, 2026 슈퍼볼 LX 하프타임 쇼 단독 헤드라이너 — 라틴 아티스트 최초 단독 공연 - 전곡 스페인어 공연 최초, 시청자 평균 1억 2,820만 명 (닐슨), 역대 4위 시청률 - 1주 전 제68회 그래미에서 '올해의 앨범' 수상 — 스페인어 앨범 사상 최초 - 2016년 푸에르토리코 슈퍼마켓 알바생 → 10년 만에 세계 최대 무대의 주인공 - Spotify 역대 최다 스트리밍 아티스트 4회(2020~2022, 2025), Billboard Hot 100 진입 113곡 - 라틴팝의 뿌리: 탱고(1920s) → 보사노바(1960s) → 살사(1970s) → 레게톤(2000s) → 라틴 트랩(2010s) - 미국 히스패닉 인구 약 20%, 라틴팝은 더 이상 '비주류'가 아닌 미국 로컬 문화의 일부 |
1. 2026년 2월 8일, 미국이 스페인어로 춤을 춘 밤
2026년 2월 8일,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리바이스 스타디움. 시애틀 시호크스와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슈퍼볼 LX 하프타임, 온통 흰색 유니폼을 입은 31세 청년이 무대에 올랐다. 등에는 본명 'OCASIO', 번호는 64. 배드 버니(Bad Bunny), 본명 베니토 안토니오 마르티네스 오카시오. 그는 12분간 단 한 마디의 영어 노래도 부르지 않았다. 전곡 스페인어. 슈퍼볼 하프타임 쇼 60년 역사상 최초였다.
무대는 푸에르토리코 그 자체였다. 야자수와 사탕수수가 필드를 채웠고, 2022년 히트곡 'Titi Me Pregunto'로 포문을 열었다. 레이디 가가가 깜짝 등장해 'Die With a Smile'을 함께 불렀고, 리키 마틴이 무대에 올라 세대의 바통을 이었다. 공연 마지막, 배드 버니는 전봇대 위로 올라갔다. 이것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허리케인으로 반복되는 대규모 정전에 시달려온 푸에르토리코의 현실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페루, 볼리비아 등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한 뒤, 마지막에 "미국, 캐나다, 그리고 나의 고향 푸에르토리코"를 외쳤다. 그리고 'TOGETHER, WE ARE AMERICA'라고 적힌 럭비공을 카메라에 비추며 말했다. "우리는 여전히 여기 서 있습니다." 시청자 1억 2,820만 명이 그 순간을 지켜봤다.
| "푸에르토리코, 우리가 100 x 35(섬의 크기, 마일)보다 훨씬 크다는 걸 믿어줘. 우리가 이루지 못할 것은 없어." — 배드 버니, 그래미 올해의 앨범 수상 소감 (2026.2.1) |
2.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슈퍼볼 무대까지...10년의 기적
1994년 3월 10일, 푸에르토리코 비야비시야 마을에서 태어난 베니토는 평범한 가정의 아이였다. 아버지와 함께 살사를 듣고, 어머니가 틀어놓는 메렝게와 팝 발라드를 들으며 자랐다. 슈퍼볼 기자회견에서 그는 "내가 이렇게 되기 전,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엄마"라고 말했다. "엄마는 누구보다 먼저 나를 믿어줬어요."
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면서 낮에는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포장하는 알바를 했다. 밤에는 SoundCloud에 음악을 올렸다. 2016년, 'Diles'가 온라인에서 폭발하면서 라틴 트랩 신(scene)의 중심에 서게 됐다. 이어 'Soy Peor'가 터지면서 Hear This Music 레이블과 계약. 슈퍼마켓 알바생의 인생이 바뀐 순간이었다.
| 배드 버니 — 슈퍼마켓에서 슈퍼볼까지 | |
| 2016 | 슈퍼마켓 알바 중 SoundCloud에 'Diles' 업로드, 라틴 트랩 신 진입 |
| 2018 | 카디 비 & J 발빈과 'I Like It' — Billboard Hot 100 1위. 데뷔 앨범 X 100pre 발매 |
| 2020 | YHLQMDLG 발매. Spotify 글로벌 최다 스트리밍 아티스트 1위 (역대 최초 라틴 아티스트) |
| 2020 (말) | El Ultimo Tour Del Mundo — 전곡 스페인어 앨범 최초 Billboard 200 1위 |
| 2022 | Un Verano Sin Ti — IFPI 선정 글로벌 연간 최다 판매 앨범. Billboard '올해의 팝스타' (라틴 남성 최초) |
| 2025 (1월) | Debi Tirar Mas Fotos 발매 — 라틴 아티스트 최초 Billboard Hot 100 통산 113곡 진입 |
| 2025 (9월) | 슈퍼볼 LX 하프타임 쇼 헤드라이너 확정 — 라틴 아티스트 최초 단독 |
| 2026 (2.1) | 제68회 그래미 올해의 앨범 수상 — 스페인어 앨범 사상 최초. 그래미 통산 6회 수상 |
| 2026 (2.8) | 슈퍼볼 LX 하프타임 쇼 공연. 시청자 1억 2,820만 명. 캘리포니아 '배드 버니의 날' 선포 |
슈퍼볼 후 빌보드 차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DtMF'의 스트리밍이 85% 급증해 주간 4,300만 회를 기록, 2026년 최대 스트리밍 수치를 세웠다. 다운로드는 3배 가까이 뛰었고, 라디오 청취 인구도 56% 증가했다. 해당 주 Hot 100 톱 10에 4곡이 동시 진입했고, 차트 전체에 18곡이 이름을 올렸다. 같은 주 테일러 스위프트의 신곡 'Opalite'조차 배드 버니의 물결에 밀려 8위에 머물렀다.
3. '영어를 안 해도 된다'...배드 버니가 바꾼 게임의 규칙
배드 버니 이전과 이후, 라틴 아티스트가 미국 주류 시장에 진입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이전: 크로스오버(Crossover)의 시대. 리키 마틴이 'Livin' La Vida Loca'로 빌보드 1위를 한 것은 1999년이다. 하지만 그 노래는 영어였다. 샤키라가 미국에서 성공한 것도 영어 앨범 'Laundry Service'(2001) 덕이었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제니퍼 로페즈, 마크 앤서니 모두 '영어로 노래해야 미국에서 통한다'는 공식을 따랐다. 라틴 아티스트에게 영어는 선택이 아닌 통행증이었다.
이후: 스페인어가 곧 무기. 배드 버니는 그 공식을 거부했다. 그는 데뷔 앨범부터 6집까지, 커리어 전체를 스페인어로 밀어붙였다. 그 결과? 전곡 스페인어 앨범으로 Billboard 200 1위를 달성한 최초의 아티스트(El Ultimo Tour Del Mundo, 2020), IFPI 글로벌 연간 최다 판매 앨범(Un Verano Sin Ti, 2022), 스페인어 앨범 최초 그래미 '올해의 앨범'(Debi Tirar Mas Fotos, 2026). 더 이상 '크로스오버'할 필요가 없었다. 세계가 스페인어로 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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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왜 배드 버니는 영어가 필요 없었나 — 세 가지 변화
(1) 스트리밍 혁명. 1999년 리키 마틴의 시대에는 라디오와 MTV가 게이트키퍼였다. 영어가 아니면 방송을 타지 못했다. 하지만 Spotify, Apple Music, YouTube의 시대에는 알고리즘이 게이트키퍼다. 좋은 음악은 언어와 무관하게 추천되고 확산된다. 배드 버니가 Spotify 글로벌 최다 스트리밍 1위를 4회 달성한 것은 이 구조 변화의 상징이다. (2) 인구 구조 변화. 미국 히스패닉/라티노 인구는 전체의 약 19~20%로, 출생률 증가와 이민 유입으로 지속 확대 중이다. 미국 서부와 남부의 클럽에서는 이미 영어권 음악보다 스페인어 댄스 음악이 더 많이 들린다. 라틴팝은 더 이상 '수입 음악'이 아니라 미국 로컬 문화의 일부다. (3) 음악적 정체성의 힘. K-팝과 비교하면 차이가 명확하다. 배드 버니의 음악을 1초만 들어도 '이건 라틴이다'라고 알 수 있다. 레게톤의 뎀 보우(Dem Bow) 리듬, 살사의 타악기, 카리브해의 열기. 확고한 정체성이 장르 자체를 브랜드로 만들었다. 과거 라틴 아티스트들이 미국 래퍼와 협업을 '원했다면', 이제는 미국 래퍼들이 배드 버니와 협업을 '원한다'. |
4. 탱고에서 레게톤까지...라틴 리듬 100년의 계보
배드 버니의 슈퍼볼 무대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뒤에는 100년에 걸친 라틴 음악의 계보가 있다. 아프리카 노예들의 리듬, 스페인 식민지의 멜로디, 원주민의 혼이 뒤섞여 만들어진 '혼혈 음악(musica mestiza)'의 역사다.
| 라틴 음악 100년 계보 — 변방에서 주류로 | ||
| 시대 | 장르 | 핵심 내용 |
| 1920~40s | 탱고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에서 탄생. 아프리카 리듬 + 유럽 멜로디 결합. 반도네온(아코디언의 일종)이 상징. 카를로스 가르델이 세계화. 라틴 음악이 최초로 유럽·미국 상류층 사교장에 진입한 순간 |
| 1940~50s | 맘보 & 룸바 | 쿠바에서 기원. 아프로쿠반(Afro-Cuban) 리듬의 결정체. 뉴욕 팔라디움 볼룸에서 미국인들을 열광시킴. 티토 푸엔테, 페레스 프라도 등이 맘보 열풍 주도. 미국 댄스홀 문화에 라틴 리듬 이식 |
| 1960s | 보사노바 |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탄생. 삼바 리듬 + 재즈 하모니 결합.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의 'Girl from Ipanema'(1964)가 세계적 히트. 세르지오 멘데스가 미국 팝 시장에 소개. '쿨(cool)'의 미학으로 재즈 뮤지션들에게 깊은 영향 |
| 1970s | 살사 | 뉴욕 라틴 이민자 커뮤니티에서 폭발. 쿠바 손(son) + 맘보 + 재즈 + 푸에르토리코 봄바가 융합. 셀리아 크루즈, 에디 팔미에리 등이 주도. '살사'라는 이름 자체가 '소스' — 모든 것을 섞는다는 의미. 라틴 음악의 상업화와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 |
| 1980~90s | 라틴 록 & 팝 | 산타나의 'Supernatural'(1999) — 라틴 록 + 팝 융합으로 그래미 8관왕. 글로리아 에스테판의 Miami Sound Machine이 80년대 미국 팝 차트 공략. 그래미에 라틴 음악 부문 신설. 훌리오 이글레시아스가 유럽 시장 장악 |
| 1999 | 라틴 익스플로전 | 리키 마틴 'Livin' La Vida Loca' — Hot 100 5주 연속 1위. 그래미 퍼포먼스가 기폭제. 제니퍼 로페즈, 샤키라, 마크 앤서니,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동시 폭발. 단, 대부분 영어로 불러야 했음 |
| 2004~ | 레게톤 | 푸에르토리코 빈민가 출신. 자메이카 댄스홀/레게 + 힙합 + 살사 + 일렉트로닉 융합. 특유의 뎀 보우(Dem Bow) 리듬. 대디 양키 'Gasolina'(2004)가 미국 진출 신호탄. 2017년 루이스 폰시 'Despacito' — Hot 100 16주 1위, YouTube 역대 최다 조회 |
| 2016~현재 | 라틴 트랩 & 뉴 라틴 | 레게톤 + 트랩 + 멈블랩 융합. 배드 버니, J 발빈, 오주나, Karol G 등 새 세대 폭발. 코리도스 툼바도스(멕시코 발라드+트랩) 등 하위 장르까지 빌보드 진입. 스페인어 노래가 영어 없이도 글로벌 차트 1위 달성하는 시대 개막 |
5. 모든 것은 섞였다...살사, 탱고, 보사노바, 레게가 만든 DNA
배드 버니의 음악을 한 장르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레게톤이 기본이되, 라틴 트랩, 덥, 플레나(푸에르토리코 전통음악), 심지어 인디 록까지 섞는다. 하지만 그 밑바닥에는 라틴 음악의 공통 DNA가 흐른다.
그 DNA의 핵심은 '뜨레씨요(Tresillo)'라 불리는 3+3+2 리듬 패턴이다. 아프리카에서 카리브해로, 쿠바 룸바에서 뉴올리언스 재즈로, 살사에서 레게톤으로 이어진 이 리듬은 라틴 음악의 심장박동이다. 레게톤의 뎀 보우(Dem Bow) 리듬도 이 뜨레씨요에 4박 베이스 드럼을 채워 넣은 변형이다. 대디 양키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댄스홀, 레게, 랩, 하우스, 살사, 바차타, 발레나토를 믹서기에 갈아 넣는 것."
탱고는 라틴 음악에 '서정성'과 '극적 감정 표현'을 선물했다. 배드 버니의 발라드 넘버에서 들리는 격정과 비탄은 탱고의 후예다. 보사노바는 '쿨함'과 '세련된 리듬 감각'을 남겼다. 재즈와의 결합을 처음 성공시킨 장르이자, 라틴 음악이 '예술'로 인정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살사는 '혼합 그 자체'를 가르쳤다. 살사(소스)라는 이름처럼 모든 것을 섞어도 된다는 자유, 그것이 레게톤과 라틴 트랩의 유전자가 됐다. 자메이카 레게/댄스홀은 레게톤에 직접적 뿌리를 제공했다. 파나마를 거쳐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한 '스페인어 레게'가 힙합·살사·일렉트로닉과 만나 레게톤이 탄생한 것이다.
| 분석: '혼혈의 힘' — 라틴 음악은 왜 섞일수록 강해지는가 라틴 아메리카는 원주민, 스페인·포르투갈 식민자, 아프리카 노예라는 세 혈류가 만나는 곳이다. 이 혼합은 비극에서 시작됐지만, 음악에서는 기적을 만들었다. 아프리카의 복잡한 폴리리듬, 유럽의 화성 체계, 원주민의 선율이 결합되면서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지만 어디에서든 몸이 반응하는' 음악이 탄생한 것이다. 라틴 음악의 진짜 경쟁력은 특정 장르가 아니라 '섞는 능력' 자체에 있다. 탱고가 재즈와 만나 보사노바가 됐고, 레게가 힙합과 만나 레게톤이 됐고, 레게톤이 트랩과 만나 배드 버니가 됐다. 순수성이 아니라 혼합성이 라틴 음악을 지속적으로 갱신시키는 원동력이다. |
6. 원주민, 백인, 흑인...비극의 만남이 낳은 세계의 리듬
라틴 음악의 뿌리를 이해하려면 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라틴 아메리카는 지구상에서 가장 극적인 인종적·문화적 충돌이 일어난 장소다.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디헤나), 15~16세기 대항해시대에 건너온 스페인·포르투갈 백인 식민자, 그리고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노동을 위해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흑인 노예. 이 세 혈류는 정복, 학살, 노예제라는 비극 위에서 만났다. 그러나 그 비극의 현장에서 기적 같은 것이 탄생했다. 음악이다.
| 라틴 음악의 세 뿌리 — 원주민, 유럽, 아프리카 | ||
| 기원 | 음악적 기여 | 라틴 음악에 남긴 유산 |
|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헤나) | 5음계(펜타토닉) 선율, 대지와 자연에 뿌리둔 영적 음악, 플루트·마라카스·차랑고 등 고유 악기 | 안데스 민속음악(와이노, 삼포냐), 멕시코 손 후아스테코의 토대. 라틴 음악 전반에 흐르는 토속적 멜로디 감각과 자연 친화적 서정성의 원천 |
| 유럽 백인 (스페인·포르투갈 식민자) | 서양 화성 체계(코드 진행), 기타·바이올린·아코디언 등 현악기, 가톨릭 성가의 합창 전통, 문학적 가사 서사 구조 | 탱고의 반도네온·기타 편성, 보사노바의 세련된 코드 진행, 볼레로의 서정적 발라드 전통. 라틴 음악에 '구조'와 '하모니'를 부여한 뼈대 |
| 아프리카 흑인 (강제 이주 노예) | 복잡한 폴리리듬(다층 리듬), 콜앤리스폰스(부르고 응답) 창법, 콩가·봉고·젬베 등 타악기, 신체 움직임과 음악의 일체화 | 살사·맘보·룸바의 타악기 중심 리듬 구조, 레게톤의 뎀 보우 리듬, 삼바의 퍼커션 앙상블. 라틴 음악을 '듣는 음악'에서 '춤추는 음악'으로 만든 결정적 요소 |
이 세 문화의 결합은 지역마다 다른 비율로, 다른 결과를 낳았다. 아프리카 인구 비율이 높았던 쿠바·푸에르토리코·브라질에서는 리듬 중심의 음악(살사, 삼바, 레게톤)이, 유럽 이민이 많았던 아르헨티나에서는 선율·화성 중심의 음악(탱고)이, 원주민 전통이 강했던 안데스 지역(페루, 볼리비아)에서는 토속 멜로디 기반의 포크 음악이 발달했다. 배드 버니의 고향 푸에르토리코는 아프리카계 봄바와 플레나, 스페인 기타 전통, 타이노 원주민의 유산이 동시에 살아 있는 '세 혈류의 교차점'이다. 그가 슈퍼볼 무대에 야자수와 사탕수수를 세운 것은 이 혼합의 역사를 무대 위에 재현한 것이다. 사탕수수는 아프리카 노예들이 경작했고, 야자수는 카리브해 원주민의 땅이었고, 그 위에 스페인 식민지의 건축물이 세워졌다.
그리고 이 세 혈류의 후예들이 지금 미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히스패닉'이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미국 내 히스패닉/라티노 인구는 전체의 약 19~20%, 6,300만 명 이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넘어 최대 소수민족이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플로리다, 뉴멕시코, 애리조나 등 남부·서부 주에서는 이미 히스패닉이 최다 인구 집단이거나 그에 근접한다. 출생률이 높고 이민 유입이 지속되면서, 2060년에는 미국 인구의 28%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라틴 음악은 더 이상 '수입 문화'가 아니라, 미국 본토 문화의 핵심 구성요소다. 미 서부와 남부의 클럽에서는 이미 영어 팝보다 스페인어 레게톤이 더 많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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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라틴팝과 아프로비츠 — 글로벌 팝의 쌍두마차
라틴팝의 부상은 단독 현상이 아니다. 나이지리아를 중심으로 한 아프로비츠(Afrobeats)의 글로벌 확산과 궤를 같이 한다. 2026 그래미에서 틸라(Tyla)가 'PUSH 2 START'로 Best African Music Performance를 수상한 것은 상징적이다. 배드 버니와 틸라는 같은 시상식, 같은 밤에 각각 '올해의 앨범'과 '아프리카 뮤직' 부문을 가져갔다.
두 장르의 공통점은 놀라울 정도로 많다. 첫째, 둘 다 아프리카 리듬에 뿌리를 둔다. 라틴 음악의 폴리리듬은 대서양을 건너온 아프리카 노예들의 유산이고, 아프로비츠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직접 발화한 리듬이다. 같은 뿌리의 두 가지다. 둘째, 둘 다 '비영어권 음악'이 스트리밍 시대에 글로벌 주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위즈키드(Wizkid), 버나보이(Burna Boy), 테마(Tems)는 요루바어·피진 잉글리시로 빌보드에 올랐고, 배드 버니는 스페인어만으로 세계 정상에 섰다. 셋째, 둘 다 확고한 음악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1초만 들어도 '이건 아프로비츠다', '이건 레게톤이다'를 구분할 수 있다. 이 '구분 가능성'이 곧 브랜드이고, 브랜드가 곧 경쟁력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장르가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프로비츠 아티스트들이 라틴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두 리듬의 교집합에서 새로운 하이브리드 장르가 태동하고 있다. 500년 전 대서양 양안에서 갈라진 아프리카의 리듬이, 21세기에 스트리밍을 통해 다시 합류하는 것이다. 영미권 팝이 '기본값(default)'이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세계의 음악 지도가 다극화되고 있으며, 그 새로운 극(極)의 중심에 라틴팝과 아프로비츠가 서 있다. |
7. 라틴 익스플로전 3번의 파도...이번엔 다르다
라틴팝이 미국 주류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세 번의 파도가 있었다.
1차 파도 (1999~2001): 크로스오버의 시대. 리키 마틴의 1999년 그래미 퍼포먼스가 기폭제였다. 소니뮤직 사장 토미 모톨라는 리키 마틴, 제니퍼 로페즈, 샤키라, 마크 앤서니를 영어 앨범으로 동시 밀어붙이는 전략을 세웠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라틴 아티스트들이 미국에서 성공하려면 영어로 노래해야 했고, 라틴의 정체성은 '약간의 향신료' 수준으로 희석됐다. 모톨라 자신도 후에 "실제로 라틴 익스플로전은 없었다, 우리가 그것을 이용했을 뿐"이라고 인정했다.
2차 파도 (2017): 데스파시토의 충격.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양키의 'Despacito'가 Hot 100에서 16주 연속 1위를 기록하며, 스페인어 노래가 영어권 차트를 지배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저스틴 비버의 리믹스 참여가 촉매 역할을 했지만, 원곡 자체가 스페인어였다는 점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 역시 단발성 히트에 가까웠고, 구조적 변화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3차 파도 (2020~현재): 배드 버니와 구조적 전환. 이번이 다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단발성 히트가 아니라 지속적 차트 점령이다. 배드 버니는 2020년부터 6년 연속 빌보드 주요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둘째, 한 명의 스타가 아니라 장르 전체가 성장했다. J 발빈, Karol G, 오주나, Rauw Alejandro, 멕시코의 Xavi와 페소 플루마까지, 라틴 아티스트 군단이 차트를 채우고 있다. 셋째, 이제 영어가 필요 없다. 2023년 빌보드 Hot 100에 오른 라틴팝 곡 중 다수가 스페인어 원곡 그대로였다.
| 라틴 익스플로전 3번의 파도 비교 | |||
| 1차 (1999) | 2차 (2017) | 3차 (2020~) | |
| 대표 곡 | Livin' La Vida Loca | Despacito | DtMF, Titi Me Pregunto 외 다수 |
| 언어 | 영어 필수 | 스페인어 (영어 리믹스로 확산) | 스페인어 단독으로 충분 |
| 유통 채널 | 라디오, MTV, CD | YouTube 중심 | Spotify, TikTok, 알고리즘 |
| 지속성 | 약 2년간 붐 후 소멸 | 단발성 히트 | 6년 이상 지속, 구조적 정착 |
| 전략 | 레이블 주도 크로스오버 | 바이럴 히트 | 아티스트 주도, 정체성 유지 |
8. "우리는 야만인이 아니다"...음악을 넘어선 정치적 선언
배드 버니의 2026년은 단순한 음악적 성취가 아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배드 버니의 슈퍼볼 출연을 "완전히 터무니없다(absolutely ridiculous)"고 비난하고, 보수 단체 터닝 포인트 USA가 하프타임 쇼에 맞서 대항 프로그램을 편성하는 상황에서, 그의 무대는 문화적 저항의 의미를 띠었다.
2월 1일 그래미에서 첫 번째 상(Best Musica Urbana Album)을 받을 때, 배드 버니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시작했다. "감사 인사 전에 먼저 이 말을 하겠습니다. ICE(이민세관단속국) OUT." 그리고 영어로 덧붙였다. "우리는 야만인이 아닙니다. 동물이 아닙니다. 외계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이고, 우리는 아메리카인입니다." ICE의 이민 단속이 강화되는 시점에서, 미국 최대 음악 시상식 무대에서 나온 이 발언은 즉각 화제가 됐다.
1주일 뒤 슈퍼볼에서는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의 국기를 든 행렬과 함께 "TOGETHER, WE ARE AMERICA"를 선언했다. '아메리카'가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 대륙 전체의 이름이라는 메시지.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은 2026년 2월 8일을 '배드 버니의 날'로 선포했다. 음악이 정치가 되고, 정치가 음악이 되는 순간이었다.
9. K-팝이 배드 버니에게서 배울 것...그리고 이미 배우고 있는 것
한국에서 라틴 음악은 아직 낯설다. 스페인어의 장벽이 크고, 라틴 특유의 직설적 감정 표현은 영미권 팝에 익숙한 한국 귀에 이질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K-팝은 이미 라틴 음악에서 꾸준히 빌려오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피 땀 눈물'은 뭄바톤(하우스+레게톤)을, 슈퍼주니어의 'MAMACITA'는 라틴 댄스를, 카드(KARD)는 커리어 전체를 댄스홀·뭄바톤 기반으로 쌓아올렸다.
배드 버니가 K-팝에 주는 시사점은 명확하다. 결국 '정체성'이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라틴팝과 아프로비츠(나이지리아 중심의 아프리카 팝)는 누구나 1초만 들어도 구분할 수 있는 확고한 음악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그 정체성이 장르 자체를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었다. K-팝이 계속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려면, '무엇이든 잘 소화하는 능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것만은 K-팝만이 할 수 있다'는 고유한 DNA가 필요하다.
그리고 실제로 교류는 시작됐다. 청하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구아이나(Guaynaa)와 스페인어로 노래한 'Demente'를 발표했고, 모모랜드는 나티 나타샤와 협업해 멕시코 시장에 진출했다. 배드 버니 자신도 3월 7일 도쿄에서 Spotify 'Billions Club Live'를 통해 아시아 첫 공연을 앞두고 있다. 라틴과 아시아의 접점은 이제 막 열리기 시작했다.
10. 슈퍼마켓에서 슈퍼볼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방콕까지
2016년, 푸에르토리코의 한 슈퍼마켓에서 식료품을 포장하던 청년이 있었다. 2026년, 그 청년은 1억 2,820만 명 앞에서 스페인어로 노래하고 있다. 배드 버니의 여정은 개인의 성공 신화를 넘어, 100년간 비주류로 취급받아온 라틴 음악이 세계의 주류로 올라서는 과정의 정점이다.
192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 빈민가의 탱고, 1960년대 리우데자네이루 해변의 보사노바, 1970년대 뉴욕 바리오(라틴 거주지)의 살사, 1990년대 킹스턴과 산후안을 오간 레게와 레게톤. 이 모든 것은 '변방의 음악'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음악, 이민자들의 음악, 식민지의 음악. 하지만 그 변방의 리듬이 결국 세계의 심장박동이 됐다.
| "이 상을 꿈을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바칩니다." — 배드 버니, 그래미 올해의 앨범 수상 소감 마지막 (영어로) |
배드 버니가 증명한 것은 단순하다.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리듬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세계가 듣는다는 것. 탱고가 그랬고, 보사노바가 그랬고, 살사가 그랬고, 레게톤이 그러고 있다. 라틴의 리듬은 100년 동안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섞이고, 변형되고, 진화하면서 계속 새로운 심장박동을 만들어왔다. 배드 버니는 그 100년의 맥박 위에 서 있을 뿐이다. 다만 그 맥박이 이제, 지구 전체에 울리고 있다.
박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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