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레거시 반도체 시대 끝…대량생산 전략 탈피
중국 저가 공세에 백기…HBM·2나노 집중으로 초격차 재점화 시동

<이미지 참조 = 게티이미지>
■ 핵심 포인트
- 레거시 D램 비중 30%→10% 미만 대폭 축소 전략
- 중국 레거시 점유율 2027년 32% 전망…백기 투항
- HBM3E 엔비디아 납품 개시…1년 지연 끝 성과
- 2나노 파운드리 수율 40%→60% 목표…TSMC 추격전
- 화성 레거시 인력→평택 첨단 재배치…구조조정 가속
- 전영현 부회장 체제 '선택과 집중' 전략 본격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가 수십 년간 고수해온 '대량생산 우선' 전략을 접고, 고부가가치 첨단 제품으로 급선회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의 저가 공세에 레거시(범용) 반도체 시장을 사실상 포기하고, HBM과 2나노 공정에 운명을 건 승부수를 띄웠다.
치킨게임 끝났다...중국에 레거시 시장 내준 삼성
삼성전자는 1월 31일 실적발표에서 "전 세계 메모리 시장 경쟁 심화에 따라 레거시 제품 수익성이 감소했다"며 "기존 D램 매출의 30%를 차지하던 레거시 D램과 낸드플래시의 비중을 대폭 축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반도체 업계 역사상 초유의 '백기 투항' 선언이었다.
그동안 삼성은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치킨게임'으로 경쟁사를 압도했다. 가격이 떨어져도 대량생산을 멈추지 않아 경쟁사를 고사시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중국이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고 레거시 반도체에 집중 투자하면서 전 세계 생산능력 중 중국 비중이 2024년 29.1%에서 2027년 32%로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 1분기 생산량이 전년 대비 40% 증가했고, 월 362억 개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격 경쟁력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 반도체 업계 관계자
1년 지연 끝 엔비디아 뚫었다...HBM 전쟁 2라운드
9월 22일, 삼성전자가 1년 넘게 실패했던 HBM3E의 엔비디아 품질 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AI 반도체 시장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에 진입한다는 것은 단순한 매출 증가를 넘어 기술력 인정을 의미한다.
범용 제품으로 구성된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HBM은 고객사마다 요구하는 제품 품질과 기술 수준이 다르다. 기존 레거시 제품과 같은 대량 생산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다. 맞춤형 소량생산이 불가피한 구조다.
| HBM 시장 점유율 변화 전망 |
| 구분 |
2024년 |
2025년 |
2027년(예상) |
| SK하이닉스 |
52.5% |
61% |
40% |
| 삼성전자 |
19% |
19% |
39% |
| 마이크론 |
20% |
20% |
19% |
증권가에서는 2027년에는 SK하이닉스 40%, 삼성전자 39%, 마이크론 19%로 전망했다. 삼성전자의 D램 생산능력이 월 웨이퍼 65만장으로 SK하이닉스 46만장 대비 크기 때문이다.
2나노 승부수...수율 40%의 벽 넘어라
파운드리는 더욱 절박하다. TSMC가 최첨단 초미세 2나노 공정에서 90% 이상 수율을 달성한 반면, 삼성전자는 30~40%에 머물고 있다. 양산 가능 수준인 60%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한진만 파운드리사업부장이 부임 후 수율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최근 후공정 업체 웨이퍼 테스트에서 40% 수준을 넘긴 것으로 전해졌다.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TSMC와의 격차는 크다.
■ 삼성 2나노 공정 로드맵
| 2025년 하반기 |
SF2P 공정 양산 (AI·모바일용) |
| 2025년 11월 |
엑시노스 2600 양산 시작 |
| 2026년 |
SF2A(자동차용), SF2X(HPC용) 상용화 |
| 2027년 |
SF2Z(BSPDN 적용) 선보일 예정 |
화성에서 평택으로...대이동 시작됐다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일부 인력이 평택으로 이동한다. 화성캠퍼스는 레거시 제품 비중이 많은 반면 평택캠퍼스는 첨단 제품 비중이 높다. 이는 단순한 인력 재배치가 아닌 사업 구조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평택 P4 공장은 당초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모두 생산하는 곳으로 설계됐지만, 파운드리 부진으로 첨단 메모리 전용으로 변경됐다. 레거시를 버리고 첨단에 올인하는 전략의 상징적 결정이다.
중국 레거시 쓰나미...한국 제조업 위기론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이 2023년 31%에서 2027년 39%로 확대될 전망이다. 중국 정부가 지난 10년간 1500억 달러의 보조금을 투입한 결과다.
문제는 한국 제조업 전반이 중국산 레거시 반도체에 의존하게 될 가능성이다. 자동차, 가전, 통신장비 등 대부분 산업이 레거시 반도체를 사용한다.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 공급망 리스크가 현실화될 수 있다.
■ 전영현 부회장의 승부수
2025년 3월 주총에서 전영현 DS부문장은 이렇게 말했다.
"빠르면 2분기, 늦어도 하반기부터 HBM3E 12단이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것"
기술통으로 불리는 그는 레거시 포기와 첨단 집중이라는 극약 처방을 선택했다.
업계는 "단기 실적 악화를 감수하고 장기 생존을 택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미래 반도체 지형도...승자와 패자
2025년 반도체 업계는 역사적 분기점에 섰다. 레거시는 중국이, 첨단은 미국·대만·한국이 주도하는 이원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삼성의 선택은 불가피했지만 위험하다.
HBM과 2나노에서 성공하면 재도약할 수 있지만, 실패하면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증권가는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11만원으로 상향 조정했지만, 이는 HBM과 파운드리 성공을 전제로 한 것이다.
| 글로벌 반도체 시장 재편 시나리오 |
| 분야 |
현재 주도국 |
2027년 전망 |
| 레거시 반도체 |
대만·중국 |
중국 독주 |
| HBM |
SK하이닉스 |
3강 경쟁 |
| 파운드리(첨단) |
TSMC |
TSMC 우위 지속 |
| AI 반도체 |
엔비디아 |
다극화 |
결론: 초격차 신화 재현할까
삼성이 택한 길은 '퇴로 없는 전진'이다. 레거시를 포기하고 첨단에 올인하는 전략은 과거 D램에서 일본을 제치고 1위에 오른 '초격차' 전략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당시와 달리 지금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경쟁자가 있고, TSMC라는 난공불락의 성이 버티고 있다.
삼성의 선택이 '영리한 후퇴'가 될지 '치명적 실수'가 될지는 앞으로 2~3년이 결정할 것이다. HBM4에서 SK하이닉스를 따라잡고, 2나노에서 TSMC와 격차를 줄이며, 중국의 레거시 공세를 버텨낸다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한다면? 삼성전자뿐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반도체가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한국으로서는 삼성의 승부가 곧 국운을 건 도박이다. 2025년 가을, 대한민국은 숨을 죽이고 평택과 화성을 바라보고 있다.
"레거시는 이미 게임이 끝났다. 이제는 첨단에서 이기는 것만이 살 길이다.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
-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 (2025년 9월)
■ 삼성 반도체 대전환 타임라인
- 2024년 1월 레거시 축소 방침 첫 시사
- 2024년 11월 한진만 파운드리 사장 부임
- 2025년 1월 레거시 30%→10% 축소 공식화
- 2025년 3월 전영현 부회장 HBM 집중 선언
- 2025년 7월 평택 P4 첨단 전용 전환
- 2025년 9월 HBM3E 엔비디아 납품 시작
- 2025년 11월(예정) 2나노 엑시노스 양산
- 2026년(목표) 2나노 대량생산 본격화
박예현 기자
Copyright (c) 2025 깨알소식.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