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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의 최악'...태국 경제, 왜 멈춰 섰나
2026년 성장률 1.5~1.6% 전망, 위기 연도 제외 30년 만에 최저. 가계부채 GDP 87%, 미국 관세 19%, 관광업 회복 실패, 3년간 총리 3명...동남아 '모범생'은 어쩌다 중진국 함정에 갇혔나2026.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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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포인트]
- 2026년 GDP 성장률 전망: IMF 1.6%, 세계은행 1.6%, 태국중앙은행(BOT) 1.5%, NESDC 1.2~2.2% - 위기 연도(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 제외 시 30년 만에 최저 성장률 - 가계부채 GDP 대비 86.8% — 코로나 이전(82.6%)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 내수 회복의 최대 걸림돌 - 미국의 대(對)태국 상호관세 19% 부과 → 2026년 수출 1.5% 역성장 전망 - 관광객 회복 둔화: 2019년 3,990만 명 → 2025년 3,300만 명 → 2026년 3,410만 명 (코로나 전 대비 85%) - 중국산 저가 제품 범람 + 바트화 10% 이상 강세 → 수출 경쟁력 이중 타격 - 3년간 총리 3명 교체, 2026년 2월 조기총선 — 정치 불확실성이 투자·재정 모두 마비 |
1. "중환자실은 벗어났다"는 재무장관, 숫자는 다른 말을 한다
태국 엑니띠 니띠탄쁘라팟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지난 2월 "태국 경제가 중환자실(ICU)을 벗어났다"고 선언했다. 2025년 4분기 GDP가 전년 동기 대비 2.5% 성장하며 재무부 전망(1.8%)을 상회했고, 연간 성장률도 2.4%를 기록했다는 것이 근거였다.
그러나 시장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주요 기관들이 내놓은 2026년 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일제히 1%대 중반에 몰려 있다. 위기 연도를 제외하면 30년 만의 최저 수치다. 재무장관의 낙관과 시장의 비관 사이 간극이 크다.
| 2026년 태국 GDP 성장률 전망 — 주요 기관 비교 | ||
| 기관 | 2025년 | 2026년 |
| IMF (2026.2) | 2.1% | 1.6% |
| 세계은행 (2026.2) | 2.0% | 1.6% |
| 태국중앙은행 BOT | 2.2% | 1.5% |
| NESDC (태국 국가경제사회개발위) | 2.0% | 1.2~2.2% (중간값 1.7%) |
| K-Research (카시콘리서치) | — | 1.6% |
| OECD | 2.0% | 둔화 전망 (2027년 2.6% 회복 예상) |
| 참고: 베트남 2025년 GDP 성장률 8.02% — 태국의 4배 이상 | ||
2. 수출·관광·내수...세 엔진이 동시에 꺼졌다
태국 경제를 떠받치던 세 축이 동시에 흔들리고 있다.
첫째, 수출이 꺾인다. 미국이 2025년 8월부터 태국산 수입품에 19%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수출 환경이 급격히 악화됐다. 2025년 상반기에는 기업들이 관세 부과 전 주문을 앞당기는 '프론트로딩(front-loading)' 효과로 수출이 반짝 증가했지만, 그 효과가 소멸되는 2026년에는 수출이 1.5%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고무제품(대미 수출의 5.46%), 보석류(2.73%), 전기기기(2.62%), 반도체 부품(1.5%) 등 주력 수출품이 직격탄을 맞는다. 여기에 중국이 자국 경기 둔화에 따른 과잉생산 물량을 동남아에 쏟아내면서, 태국 제조업은 안팎으로 압박받는 상황이다.
둘째, 관광업이 회복되지 않는다. 한때 GDP의 20%를 차지하던 관광업은 코로나 이전 수준(2019년 3,990만 명)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2025년 외국인 관광객은 3,300만 명에 그쳐 2024년보다 오히려 감소했다. 정부는 당초 3,700만 명을 목표로 잡았다가 3,300만→3,200만 명으로 두 차례 하향 조정했다. 가장 큰 타격은 중국인 관광객이다. 2025년 1~10월 기준 중국인 입국이 전년 대비 34% 감소해 말레이시아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안전 우려, 바트화 강세로 인한 가격 경쟁력 하락, 아시아 국가 간 '관광 전쟁' 심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2026년에는 3,410만~3,550만 명으로 소폭 회복이 예상되지만, 코로나 이전의 85~89% 수준에 머물 전망이다.
셋째, 내수가 살아나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가계부채다. GDP 대비 86.8%(2025년 2분기)에 달하는 가계부채는 코로나 이전(82.6%)보다 여전히 높다. 소비자 신뢰지수는 2025년 7월 51.7까지 하락해 2023년 1월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소비자들은 돈을 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빚에 눌려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은행들도 부실채권 증가에 대비해 고위험 차주 대출을 조이고 있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의 자금줄이 막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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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트리플 쓰렛(Triple Threat)' — 태국형 복합위기의 구조
태국의 위기는 단일 원인이 아닌 복합 구조다. 미국 관세(외부 충격) + 가계부채(내부 취약성) + 정치 불안정(정책 마비)이 동시에 작용하는 '트리플 쓰렛'이다. 과거 1997년 외환위기는 외부 충격이 주된 원인이었고, 2020년 코로나는 일시적 셧다운이었다. 하지만 2026년의 위기는 구조적이다. 수출 경쟁력 약화, 관광업 정체, 내수 위축이 서로를 악화시키는 악순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가계부채는 '조용한 위기(quiet crisis)'라 불린다. 눈에 띄는 파산이나 금융위기는 없지만, 소비를 장기적으로 억누르며 경제 전체를 서서히 질식시키고 있다. |
3. 바트화가 강해질수록 경제는 약해진다...환율의 역설
통상 통화 강세는 경제력의 반영이다. 그러나 태국의 경우, 바트화 강세가 오히려 경제를 옥죄고 있다. 2025년 바트화는 달러 대비 10% 이상 절상됐다. 태국중앙은행(BOT)은 "강한 바트가 2026년 수출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공식 경고했다.
바트화 강세의 영향은 다층적이다. 수출 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잃고, 관광업은 방문 비용 상승으로 가성비 매력이 떨어진다. 중국·베트남 등 통화가 약세인 경쟁국에 비해 태국산 제품과 관광의 매력이 동시에 약화되는 이중 타격 구조다. 특히 중국산 저가 제품이 태국 시장에 범람하는 상황에서, 바트화 강세는 수입 가격을 낮춰 중국 제품의 가격 우위를 더욱 강화시키는 역효과까지 낳고 있다.
4. 3년간 총리 3명...경제를 움직여야 할 정부가 없다
태국의 정치 불안정은 경제 위기를 증폭시키는 핵심 요인이다. 태국은 최근 3년간 총리가 3번 바뀌었다. 탁신 친나왓의 딸 패통탄 친나왓 총리가 직무 정지되는 등 정치적 격변이 이어지면서, 2026 회계연도 예산 편성이 지연되고 공공 인프라 투자가 마비됐다.
2026년 2월 8일에는 조기 총선이 치러졌지만, 새 정부 구성 과정의 불확실성이 다시 투자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 NESDC는 "총선 전후의 정치 불확실성이 소비자·투자자 신뢰를 약화시키고, 새 정부 구성이 지연될 경우 2027 회계연도 예산 편성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세계은행도 "정치적 불확실성이 공공 인프라 투자와 전반적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까지 겹쳤다. 지난해 약 3주간 무력 충돌이 벌어지면서 지정학적 리스크가 관광업과 외국인 투자에 추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5. '동남아의 디트로이트'는 어디로 갔나...중진국 함정의 그림자
태국의 위기는 단기적 경기 둔화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다. OECD는 2025년 태국 경제 보고서에서 "1인당 GDP 추격 속도가 현저히 둔화됐고, 빈곤 감소의 속도도 줄었다"고 진단했다. '동남아의 디트로이트'로 불렸던 자동차 산업이 대표적이다. 2018년 217만 대로 세계 10위였던 자동차 생산량은 이후 매년 감소세를 보이며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제조업은 2025년 기준 7개월 연속 위축돼 9년 만에 최장 연속 하락 기록을 세웠다.
경쟁국과의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베트남은 2025년 8.02% 성장을 기록해 태국의 4배에 달했다. 인도네시아도 5%대 성장을 유지하며 동남아 최대 경제국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다. The Diplomat은 "베트남의 명목 GDP가 2026~2027년에 태국을 추월해 동남아 3위 경제국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을 소개했다. 한때 동남아 경제의 모범생이었던 태국이, 인접국에 추월당하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다.
| 분석: 'K자 회복' — 같은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두 개의 경제 태국 경제의 또 다른 특징은 'K자 회복(K-Shaped Recovery)'이다. 대기업·전자·반도체 관련 기업은 글로벌 AI 수요 덕에 성장하고, BOI(투자진흥청) 인센티브를 받는 데이터센터·PCB·반도체 분야에는 수조 바트 규모 투자가 들어온다. 그러나 중소기업과 저소득 소비자는 높은 부채, 정체된 소득, 축소된 대출에 시달리고 있다. 위에서는 성장하고 아래에서는 침체하는 구조다. 이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는 한, 평균 성장률은 의미를 잃는다. 문제는 '평균'이 아니라 '분포'다. |
6. 처방전은 있는가...IMF·세계은행이 던진 숙제
국제기구들은 태국에 명확한 처방전을 제시하고 있다. IMF는 2026년 2월 태국 연례 협의(Article IV) 결과에서 재정 긴축과 통화 완화의 조합, 가계부채 구조조정,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 구조개혁 가속화를 권고했다. 세계은행은 '그린 제조업'으로의 전환을 태국 경제에 활력을 되찾는 유망 경로로 제시했다.
구체적 과제를 정리하면 이렇다. 단기적으로는 추가 금리 인하(BOT 기준금리 현재 1.50%)와 가계부채 구조조정 프로그램 확대가 필요하다. 중기적으로는 세수 확대를 통한 재정 여력 확보, 고령화 대비 사회안전망 강화가 시급하다. 장기적으로는 무역 다변화, 노동생산성 향상, 비공식 경제(informal economy) 축소, 반부패 거버넌스 강화 등 구조개혁이 핵심이다.
그러나 처방전은 있어도 처방할 의사(정부)가 불안정하다. IMF 자신도 "정책 여력이 제한적"이라고 인정했다. 공공부채가 이미 높은 상황에서 무제한 재정 투입은 불가능하고, 금리 인하 여지도 제한적이다. 결국 '정확한 타이밍과 적정 규모의 정책 조합'이 관건인데, 그것은 안정적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7. 태국의 거울...한국이 읽어야 할 경고
태국의 위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계부채 GDP 87%, 고령화 진행, 수출 의존 경제, 정치 불안정, 중국산 저가 제품과의 경쟁. 이 키워드들은 한국 경제에도 익숙하다.
특히 '중진국 함정'의 구조는 한국에 직접적 시사점을 준다. 태국은 1990년대 중반까지 연 7~8%대 고성장을 구가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3% 이상 성장이 드물어졌다. 관광과 제조업이라는 두 축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한 축이 흔들리면 전체가 동요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한국도 반도체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태국의 사례는 '한 바구니에 달걀을 담는' 위험을 경고한다.
또한 태국은 한국의 12번째 교역국이자 동남아 주요 투자 대상국이다. 태국 경제의 둔화는 한국 기업의 현지 사업 환경에도 직접 영향을 미친다. 현대·삼성·LG 등 주요 기업이 태국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고, K-콘텐츠와 K-뷰티의 동남아 소비 시장으로서 태국의 역할도 크다. 태국의 내수 위축은 곧 한국 기업의 동남아 매출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 "올해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 정책 여력은 낮지만, 그렇다고 없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면 사용할 것이다." — 피티 디시야탓(Piti Disyatat), 태국중앙은행 부총재 |
태국 경제의 현재는, 고성장이 멈춘 뒤 구조 전환에 실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실시간 교본이다. 수출 경쟁력은 약화되고, 관광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계부채는 소비를 질식시키고, 정치는 정책을 마비시킨다. "중환자실을 벗어났다"는 재무장관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환자실을 벗어난 것이 곧 건강하다는 뜻은 아니다. 태국 경제는 지금 회복실에 있다. 그리고 회복실의 처방전은 아직 작성 중이다.
박예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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