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 인천 송도에서 열린 '2025 인천국제마라톤' 결승선에서 포착된 한 장면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국내 여자부 1위로 골인한 삼척시청 이수민 선수(기록 2시간 35분 41초)가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 소속팀 김완기 감독이 타월로 상체를 감싸며 강하게 붙잡는 모습이 생중계 화면에 그대로 잡힌 것이다. 이수민 선수가 얼굴을 찡그리며 감독의 손을 뿌리치는 장면은 온라인에서 급속히 확산되며 '성추행 논란'으로 번졌다.

"성추행 아니다…문제는 강한 접촉으로 인한 통증"

논란이 확산된 지 이틀 만인 25일, 당사자인 이수민 선수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 그는 먼저 "저는 이번 상황을 '성추행'이라고 단정하거나 주장한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문제의 본질은 성적 의도 여부가 아니라, 골인 직후 예상치 못한 강한 신체 접촉으로 인해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수민 선수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했다. "당시 저는 숨이 가쁘고 정신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옆에서 갑작스럽게 매우 강한 힘으로 제 몸을 잡아채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가슴과 명치에 강한 통증이 발생했고, 저항해도 벗어나기 어려울 정도로 팔이 압박된 채 구속감을 느꼈습니다."

감독 해명에 선수 정면 반박…"사과도, 대화 시도도 없었다"

김완기 감독은 논란 직후인 2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마라톤이 힘들다 보니 특히 여자 선수들 같은 경우는 결승선을 통과하자마자 실신하고 쓰러지는 상황들이 많다"며 "안 잡아주면 넘어지고 많이 다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또한 "시청자 입장에서는 추행이 아니냐 생각할 수 있지만, 육상 쪽에서는 이런 사례가 다반사"라고 덧붙였다. 특히 김 감독은 이수민 선수가 먼저 사과했다고 주장했다. "이 선수가 '세게 들어오다 보니 명치 끝이 닿아 너무 아파서 자기도 모르게 뿌리치다시피 했다. TV에도 그런 장면이 나가 정말 죄송하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수민 선수의 입장은 달랐다. 그는 "이번 상황이 발생한 이후 제가 먼저 감독님을 찾아가 '골인 직후 너무 강하게 잡아당기셔서 통증이 있었다. 그 행동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전달했다"면서도 "구체적인 사과나 인정은 전혀 없었고, 말을 돌리는 식으로 대응하셨다"고 반박했다. 이수민 선수가 가장 충격받은 것은 감독의 일방적 해명이었다. "감독님 단독으로 '본인 잘못이 없다'는 입장을 먼저 밝히는 모습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수를 보호하고 상황을 바로잡아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조사도 없이 해명 자료를 공개하는 모습은 매우 힘들고 혼란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재계약 문제…선수생활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

이수민 선수는 현재 통증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병원에서 2주 치료 소견을 받고 회복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으로 인한 선수 생활의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토로했다. 그는 "이번 일을 정리하기 위해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사실들을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앞으로 다시는 비슷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동시에 "축제 같은 대회에서 이런 논란이 발생해 많은 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 크다"며 우승의 기쁨 대신 사과부터 해야 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김완기 감독, 한국 마라톤 전성기 이끈 레전드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김완기 감독은 1990년대 한국 마라톤 전성기를 이끈 핵심 인물이다. 1988년 경부역전 최우수 신인상으로 이름을 알린 뒤, 1990년 동아마라톤 우승(2시간 11분 34초), 1994년 동아국제마라톤에서 당시 한국 신기록(2시간 8분 34초)을 세우며 황영조, 이봉주와 함께 한국 마라톤의 계보를 이은 선수로 평가받는다. 선수 은퇴 후 지도자로 전향한 김 감독은 2022년 창단된 삼척시청 육상팀 감독으로 부임해 선수단을 이끌어왔다. 올해 4월 '2024 군산새만금국제마라톤대회'에서는 개인전 1·2·5위와 단체전 1위를 석권하는 성과를 거뒀으며, 이수민 선수와는 약 2년간 호흡을 맞춰왔다.

삼척시 진상조사 착수…온라인 여론은 양분

논란이 확산되자 삼척시청은 체육과를 통해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국민신문고에는 100건이 넘는 민원이 접수됐으며, 일부에서는 인권침해 관련 진정도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여론은 양분됐다. 일각에서는 "누가 봐도 문제없는 장면이었다", "마라톤을 모르면서 감독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이라며 성추행 의혹 제기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논란 상황을 만든 건 감독인데 왜 선수가 사과해야 하나", "상습적으로 반복된 행위인지 조사가 필요하다"며 감독의 해명을 납득하지 못하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언론도 주목…"타월 씌우려다 성추행 논란"

이번 논란은 일본 언론에서도 보도될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일본 매체들은 "타월을 씌우려다 성추행 논란이 된 한국 마라톤 감독" 등의 제목으로 사건을 다루며 국제적 관심사로 번지는 양상이다.


한편, 통상 마라톤 결승 직후에는 저체온증 예방을 위해 담요나 타월을 가볍게 덮어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김 감독도 "여자 선수들이 결승선 직후 실신하는 경우가 흔해 잡아주지 않으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사례에서는 '가볍게 덮어주는' 수준이 아닌 '강하게 붙잡는' 행위가 문제가 됐다는 점에서, 선수 안전 조치의 적정선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수민 선수는 입장문 말미에 "논란이 커진 이후에도 감독님은 저에게 찾아와 상황을 해결하거나 대화를 시도한 적이 없다"고 적었다. 국내 여자부 1위라는 영광의 순간이 논란으로 얼룩진 가운데, 삼척시청의 진상조사 결과와 양측의 후속 대응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