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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요?"...김길리, 우상 최민정 넘어 1500m 금메달 '2관왕'에 눈물의 세대교체
김길리 2분32초076 금메달, 최민정 은메달로 한국 최다 메달 7개 신기록...올림픽 은퇴 선언에 두 선수 포옹하며 눈물2026.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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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포인트
- 김길리(22), 여자 1500m 결승 2분32초076으로 금메달...3000m 계주에 이어 대회 '2관왕' 등극 - 최민정, 2분32초450 은메달로 올림픽 통산 7개 메달(금4, 은3)...한국 올림픽 역대 최다 메달 신기록 - 최민정 올림픽 은퇴 선언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눈물...후회 없는 경기였다" - 김길리, 최민정 은퇴 소식에 "진짜요?" 반문하며 눈물..."언니만큼 훌륭한 선수 되겠다" - 한국 선수단 대회 3번째 금메달, 쇼트트랙 개인전 첫 우승...역대 여자 1500m 5번째 금 |
결승선까지 2바퀴. 직선주로에서 김길리가 최민정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12년간 한국 여자 쇼트트랙을 지켜온 '여제'와, 그 여제를 보며 꿈을 키운 22세 후배가 나란히 달리는 순간이었다. 김길리가 앞으로 치고 나갔다. 최민정은 더 이상 따라붙지 못했다. 마지막 바퀴, 격차는 더 벌어졌다. 결승선을 먼저 끊은 김길리가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렸고, 뒤따라 들어온 최민정은 환하게 웃으며 후배를 안아줬다.
2026년 2월 2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스케이팅 아레나.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마지막 경기인 여자 1500m 결승에서 김길리(22, 성남시청)가 2분32초076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민정(성남시청)은 2분32초450으로 은메달을 차지했다. 동메달은 코린 스토다드(미국, 2분32초578)에게 돌아갔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가장 아름다운 세대교체가 밀라노의 빙판 위에서 완성됐다.
'람보르길리'의 역주 - 넘어져도 죽지 않는 실력
쇼트트랙 팬들 사이에서 '람보르길리'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김길리의 첫 올림픽은 순탄치 않았다. 여러 차례 넘어지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김길리는 그때마다 일어섰다. 여자 1000m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올림픽 데뷔전을 치렀고, 3000m 계주에서는 마지막 주자로 나서 기적적인 역전극을 연출하며 금메달을 합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개인전, 주종목 1500m에서 금메달까지 석권하며 대회 2관왕(금2, 동1)에 올랐다.
이날 결승 레이스는 쇼트트랙 특유의 심리전이 돋보였다. 출발 신호 후 선수들은 세 바퀴까지 마치 산책하듯 느긋하게 시작했다. 김길리(4번 레인)와 최민정(1번 레인) 모두 중반까지 3~5위권에서 체력을 아끼며 추월 기회를 엿봤다. 5바퀴를 남겨두고 최민정이 먼저 2위로 치고 올라갔다. 김길리도 시동을 걸어 4바퀴를 남기고 3위에 안착했다. 남은 3바퀴, 최민정이 1위, 김길리가 2위. 한국 선수 간 금메달 경쟁이 시작됐다.
승부가 갈린 건 2바퀴를 남긴 직선주로였다. 김길리가 최민정을 제치며 1위로 올라섰다. 마지막 바퀴에서 최민정은 더 이상 스퍼트를 내지 못했고, 김길리는 거리를 더 벌리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결승선을 끊은 두 선수는 서로를 안아주며 격려했다. 이탈리아 쇼트트랙 전설 아리안나 폰타나는 5위에 그치며 자국 팬들 앞에서 추가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 여자 쇼트트랙 1500m 결승 결과 | |||
| 순위 | 선수 | 국적 | 기록 |
| 1 (금) | 김길리 | 대한민국 | 2:32.076 |
| 2 (은) | 최민정 | 대한민국 | 2:32.450 |
| 3 (동) | 코린 스토다드 | 미국 | 2:32.5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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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리 경기 후 인터뷰
"계주 다음으로 금메달을 따고 싶었던 주종목 1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레이스였다." "넘어져도 내 실력은 죽지 않으니까, 내 자신을 믿으면서 경기하려고 했다." "꿈의 무대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믿기지 않는데, 어릴 때부터 존경하던 선수를 이기고 땄다는 게 더욱 놀랍다. 언니랑 같이 시상대에 오르고 싶었는데, 이뤄서 너무 좋다." |
김길리는 이로써 생애 첫 올림픽에서 메달 3개(금2, 동1)를 수확했다. 첫 출전 올림픽에서 3개 이상 메달을 딴 한국 여자 선수는 2014 소치 대회 심석희(금1, 은1, 동3) 이후 12년 만이다. 이번 금메달은 한국 쇼트트랙이 밀라노 대회에서 거둔 개인전 첫 우승이자,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최가온, 3000m 계주에 이어 한국 선수단의 세 번째 금메달이다.
최민정, 7개의 메달과 함께 떠나다
이날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은메달의 최민정이다. 2018 평창, 2022 베이징에 이어 사상 최초 여자 1500m 올림픽 3연패에 도전했지만, 후배 김길리에게 막판 스퍼트에서 밀리며 대기록 달성은 무산됐다. 하지만 최민정은 이 은메달로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한국 선수 최다 메달 신기록을 세웠다. 통산 금메달 4개, 은메달 3개, 총 7개. 진종오(사격), 김수녕(양궁), 이승훈(스피드스케이팅)이 공동 보유하던 6개를 넘어선 단독 1위다.
| 최민정 올림픽 메달 기록 (통산 7개 - 한국 역대 최다) | ||
| 대회 | 종목 | 메달 |
| 2018 평창 | 여자 1500m | 금메달 |
| 여자 3000m 계주 | 금메달 | |
| 2022 베이징 | 여자 1500m | 금메달 |
| 여자 1000m | 은메달 | |
| 여자 3000m 계주 | 은메달 | |
| 2026 밀라노 | 여자 3000m 계주 | 금메달 |
| 여자 1500m | 은메달 | |
결승선을 통과한 뒤, 최민정은 태극기를 두르고 관중석에 인사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시상대 위에서도 몰래 눈물을 훔쳤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취재진 앞에서 최민정은 담담하게, 그러나 눈물을 참지 못하며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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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정 경기 후 인터뷰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다. 후회 없는 경기를 펼쳐 후련하다. 여러 감정이 겹치면서 눈물이 난다." "은메달이어도 금메달보다 가치 있다고 느꼈다. 준비하는 과정이나 경기 내용, 결과까지 모두 만족스럽다." "7개의 메달을 내가 다 따냈다는 게 안 믿긴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다." "길리에게 '1등이 한국 선수, 그중에서도 길리 너라서 기쁘다'고 축하해줬다. 이제 길리가 있어서 한국 쇼트트랙이 더 밝을 것이라 믿는다." "이런 순간이 왔을 때 그만 울자고 다짐했는데 결국 못하고 있다. 그냥 이건 기뻐서 우는 걸로 해주세요." |
"진짜요?"...눈물의 세대교체
가장 뭉클한 순간은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찾아왔다. 최민정보다 나중에 취재진을 만난 김길리는 금메달의 기쁨을 이야기하던 중, 최민정이 앞서 올림픽 은퇴를 선언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끼는 후배에게 에이스 자리를 물려주게 돼 뿌듯하다는 말까지.
김길리는 "진짜요?"라고 반문했다. 놀란 표정은 곧 굵은 눈물로 바뀌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김길리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언니가 그렇게 말해주니까 너무 고맙다. 민정 언니한테 많이 배우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나도 언니를 바라보며, 언니만큼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 금메달의 환호가 아닌, 우상과의 이별에 흘린 눈물이었다.
최민정은 전이경, 진선유로 이어지는 한국 여자 쇼트트랙 슈퍼 에이스 계보의 세 번째 주인공이었다. 2014-2015시즌 처음 국가대표가 된 이후 10년 넘게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을 지켜왔다. 무릎과 발목 부상, 심적 고비를 넘기면서도 세 차례 올림픽에서 7개 메달을 땄다. 그리고 마지막 올림픽의 마지막 경기에서, 자신이 키운 후배에게 금메달을 내주고 은메달과 함께 빙판을 떠난다. 최민정은 말했다. "전이경 선배, 진선유 선배를 보며 꿈을 키웠듯 길리도 나를 보며 성장했다는 점이 기쁘다."
| 한국 여자 쇼트트랙 1500m - 빙판 위의 계보 | ||
| 대회 | 금메달리스트 | 의미 |
| 2002 솔트레이크 | 고기현 | 한국 여자 1500m 첫 금메달 |
| 2006 토리노 | 진선유 | 2연패 달성 |
| 2018 평창 | 최민정 | 홈 올림픽 금메달 |
| 2022 베이징 | 최민정 | 2연패, 세계/올림픽 기록 보유 |
| 2026 밀라노 | 김길리 | 최민정 3연패 저지, 새 에이스 등극 |
밀라노의 빙판이 남긴 것
이날 경기는 한국 쇼트트랙의 밀라노 올림픽 마지막 무대이기도 했다. 쇼트트랙 대표팀은 대회 최종일에 여자 1500m 금-은, 남자 5000m 계주 은메달까지 금1-은2를 추가하며 체면을 지켰다. 밀라노 대회 쇼트트랙 전체 성적은 금메달 2개(여자 3000m 계주, 여자 1500m 김길리), 은메달 3개(남자 1500m 황대헌, 남자 5000m 계주, 여자 1500m 최민정), 동메달 2개(남자 1000m 임종언, 여자 1000m 김길리)로, 쇼트트랙에서만 메달 7개를 수확했다.
한국 선수단은 이로써 밀라노 대회 통산 10개 메달(금3, 은4, 동3)을 확보했다. 최민정이라는 시대가 아름답게 막을 내리고, 김길리라는 새 시대가 열렸다. 레이스를 마친 뒤 서로를 끌어안고 웃으며 울었던 두 선수의 모습이, 이 대회에서 한국 쇼트트랙이 남긴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될 것이다.
김길리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빨리 숙소 가고 싶다. 도핑 검사도 해야 하는데 빨리 끝내고 가족한테 금메달 자랑하고 싶다." 22세 올림픽 2관왕의 솔직한 한마디에 취재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박예현 기자 ⓒ 2026 깨일소식. All rights reserved.